[시론] 남용막아야 할 증권집단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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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 < 법무법인 율촌 미국변호사 >
연전에 미국에서 증권법의 대가라고 꼽히는 학자들과 자리를 같이 한 일이 있는데 그들이 우리나라 증권관련집단소송제도 도입 움직임에 관심을 표하기에 도입이 결정되었다고 답해 주었다.
그러자 "코리아가 일냈다"는 톤으로 농담이 오갔고 무슨 뜻이냐는 질문에 "참으로 어렵고 복잡한 영역"에 한국이 발을 들여놓은 것에 대해 놀랐다는 답이 돌아왔다.
증권관련 집단소송제가 우여곡절과 논란끝에 사실상 내년부터 시행된다.
이 제도도 시행해 보면 다른 여러 제도와 마찬가지로 시행착오와 예기치 못했던 문제를 노정할 것이다.
특히 이 제도에 찬성하는 측이나 반대하는 측 공히 무분별한 소송이 제기될 가능성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그 때문에 소송남용방지 장치가 더 연구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미국에서는 증권집단소송이 지난 1938년에 도입되었다.
그러나 숱한 문제들이 드러나 1995년에 증권소송개혁법(Private Securities Litigation Reform Act)이 제정되기에 이른다.
이 법의 가장 큰 목적은 소송의 남용 방지다.
미국 증권집단소송은 미국상원 조사보고서에서도 나오듯 주가가 현저히 하락하기만 하면 이유불문하고 며칠, 심지어는 몇시간내에 제기되는 문제가 있었다.
즉 '준비된 원고'들이 항상 대기하고 있는 것이다.
피고가 된 기업들은 소송비용과 회사의 신용하락 우려 때문에 화해로 사건을 종결하려는 강한 유혹을 받게 된다.
또 소송이 진행되는 경우 회사와 회사를 돕는 주변의 증권회사,전문가들이 주고받은 내용들이 모두 법정에서 공개되어 증거로 사용되므로 회사가 사업 내용에 대한 공시를 최대한 자제하게 되고 주변과의 커뮤니케이션도 축소시키게 되므로 이는 투자자들에게 필요한 정보의 공급을 줄이는 치명적 부작용도 낳는다.
증권소송 개혁법은 회사의 공시중 일부에 대한 '안전항(safe harbor)'을 마련해 주고 있고 원고로 하여금 소송이 제기됐을 때 문제가 되는 공시를 하나하나 지정하게 하는 것은 물론 피고의 고의나 과실에 대한 엄격한 소명을 요구한다.
이 두번째 요건은 담당 법관이 사전에 심사하도록 돼 있어 이 단계를 통과하지 못하면 증거를 수집하는 행위가 허가되지 않고 소송은 중단된다.
이 법에 대해 클린턴 대통령은 당시 거부권을 행사했으나 의회가 다시 통과시켜 발효되었다.
이 법에 대해 주주대표소송 전문변호사 한 사람은 "거짓말 라이선스 법"이라고 공격하였으나 그 후 사건의 동향과 시장의 반응을 연구한 학자들은 효율적인 법으로 평가한다.
이러한 소송남용 방지장치를 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소송 건수는 증가했다.
스탠퍼드법대 증권집단소송연구센터가 지난 1996년부터 수집한 데이터는 현재 2천1백건을 넘고 있다.
반면 상대적으로 많은 수의 소송이 법원에서 중단됐고 법원의 심사를 통과한 소송의 경우(소송남용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 더 많은 액수의 손해배상과 화해로 연결되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손해배상액은 많게는 30억달러까지 치솟는다.
즉 이 법이 옥석을 가려내는데 성공했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특히 이법의 소송남용 방지장치가 부실공시를 감소시키는데 보다 효율적인 수단으로 기능한다는 의미이다.
증권회사,회계사,IT업계,제약업계는 우연한 주가하락으로 인한 무분별한 소송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음을 기뻐하였다.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이 중요한 과제인 우리나라의 실정에서 증권관련 집단소송과 그를 가동시키는 전문가들의 역할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제도라 해도 발상지를 떠나 다른 문화와 경제,정치 환경아래 이식되면 독특한 결과를 내기도 한다.
남소방지 장치를 기업의 이기적인 생각에서 유래한다고만 볼 일이 아니다.
훌륭한 남소방지 장치는 부실공시를 감소시켜 보호받을 자격이 있는 투자자와 사회경제 전체에 도움이 됨을 미국의 경험이 말해 준다.
/KDI 국제정책대학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