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연일 '연기금 활용방안'을 쏟아내고 있다. 이헌재 경제부총리는 14일 "외국 투기자본의 적대적 인수.합병에 대비하고 국내 기업 경영권 방어를 위해 연기금을 적극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노무현 대통령도 해외순방 중 "경제 성장을 위해 연기금이 주식투자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거듭 강조했다. 이에 앞서 정부는 국민연금등 4대 공적연금을 경기부양을 위한 '한국형 뉴딜사업'에 투입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들을 종합하면 연기금이 대한민국의 '경제 해결사'처럼 여겨지는 분위기다. 기업 경영권 방어,주식시장 안전판,경기부양,사회간접자본(SOC) 확충,공공 복지시설 확충... 정부와 여당이 최근에 밝힌 연기금 활용처만 꼽아도 한손이 모자란다. 경제,사회,복지 등 전방위 부문에서 정부가 연기금의 '역할론'을 거론하는 가운데 이에 대한 비판 여론도 강해지고 있다. 하지만 연기금의 입장에서도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규모를 감안할 때 투자처 확대가 절실한 형편이어서 이에 따른 '투자 다변화 대세론'도 제기되는 실정이다.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연기금의 운용과 그 과제를 시리즈로 짚어본다. 연기금을 기업경영권 방어에 활용하겠다는 정부의 구상은 연기금이 '증시 안전판'역할을 해줘야 한다는 그간 증권업계의 입장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관련 기업들도 환영하는 분위기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외국인 지분(현재 77.2%)이 너무 과도하다는 생각에 내국인 지분을 확대하는 방안을 계속 강구해 왔다"며 "연기금처럼 자금력이 풍부한 기관에서 주식을 사주는 것이 내국인 지분을 강화할 수 있는 지름길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연기금의 주식투자 확대에 대해 김형태 증권연구원 부원장은 "안정적인 기관투자가가 있으면 증시 변동성을 43% 정도 완화할 수 있다는 게 연구 결과"라며 "연기금의 주식투자 확대를 통한 증시안정은 결국 연기금의 투자안정성을 위해서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반대론도 만만찮다. 일단 정부의 '신(新)관치'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연기금이 대기업의 경영권을 좌우할 지분을 갖게 되면 정부가 기업 경영권에 간여하는 '입김'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연기금을 증시부양 수단으로 '악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핵심 동원대상'인 국민연금에 대해서는 국민의 노후생활을 보장하는 공적연금을 정부가 예산처럼 좌지우지하려 드느냐는 비판이 거세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관계자는 "안정성이 최우선시돼야 할 국민연금을 증시부양이나 경기부양에 마구잡이로 동원하다간 재정고갈을 앞당길 공산이 크다"고 우려했다. 재계 일각에서도 경영권 방어를 위해서는 '차등 의결권 제도'나 '황금주'(주요 의사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식) 등 보다 실효성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당장 금융회사의 계열사 지분에 대한 의결권 제한부터 완화하라는 목소리가 크다. '뉴딜'에 대한 실효성 논란도 가열되는 양상이다. 1백36조원에 달하는 여유자금의 투자처를 찾지 못하는 연기금의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견해가 많다. 정부 약속대로 안정적인 적정수익률만 보장된다면 투자 다변화 차원에서 검토해볼 만하다는 평가다. 하지만 상당수 전문가들은 "수익이 날 만한 SOC 투자처 발굴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기존의 SOC 투자 계획은 향후 경제가 5~6% 이상 성장한다는 전제 아래 세워진 것인데 지금처럼 4%대의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될 것으로 보이는 경제상황에서 과도한 SOC투자는 오히려 경제에 부담을 늘리는 한편,그 모자란 부분을 메우기 위한 정부 재정이 필요해 결과적으로 국민의 세부담만 가중시키리라는 비판이다. 조세연구원 관계자는 "정부가 제시한 사업들은 기본적으로 국채수익률을 밑돌 수 있는 것들"이라며 "정부의 보전 부담이 예상 이상으로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홍익대 신성환 교수는 "국민연금이란 거대 자금을 SOC에 투자할 경우 도덕적 해이가 초래될 공산이 크다"고 지적했다. 같은 논리에서 복지사업도 '수익사업'이 아니라는 점에서 우려가 나온다. 김혜수 기자 dear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