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한국 핵물질 실험보고서에 대한 보도와 관련해 `무기급 핵물질 생산'이나 `안전조치협정 위반'이라는표현이 잘못된 것인지 여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우리 정부는 이에 대해 보고서 내용에 `무기급이나 준무기급'이라 표현은 전혀없으며 플루토늄 생산도 사실과 다른 보도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 당국은 또 보고서가 지적한 것은 한국의 안전조치 협정 위반이 아니라 단순한 `신고누락'이라면서 외신이 침소봉대한다고 반박하고 있다. 그러나 IAEA 관계자와 IAEA에 정통한 현지 전문가 및 외교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정부 당국의 이러한 설명에는 사안을 우리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해석하는 측면과 아울러 객관적 사실과도 맞지 않는 점들이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 안전조치협정 부분 : IAEA 보고서는 "이러한 (한국의) 핵물질 실험 활동의성격과 한국 정부가 핵안전조치협정에 따라 보고했어야 하는 사항을 제 때 보고하지않은 것은 `심각한 우려 사항'이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IAEA의 한 관계자는 11일과 12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안전조치협정의 두 가지 큰 기둥은 핵활동에 대한 신고 의무와 사찰 수용이라면서 한국은 이 가운데 신고 의무를 지키지 않았음을 지적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한국 정부가 문제가 불거진 이후 사찰을 수용하고 성실히 협조했으나과거에 신고하지 않은 부분은 "협정 위반에 해당된다"는 설명이다. 보고서 지적사항을 간단히 줄여 표현할 때 한국 정부나 언론으로선 `신고의무누락'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으나 외신 등이 `협정 위반'이라고 표현한 것이 왜곡이나 침소봉대가 아니라는 뜻이다. 현지의 한 외교소식통도 IAEA 보고서의 내용은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한국의 협정 위반을 지적한 것이라는 견해에 동의했다. 다만 ▲이후 사찰을 받고 성실히 협조했으며 ▲오래 전에 관련 활동을 중단한것으로 판단되며 ▲무기 개발이 아닌 연구용인 것으로 추정되므로 이란이나 더욱이북한과는 사안이 다르다는 점을 명백히 시사하고 있다는 측면을 그는 강조했다. 북한의 경우 신고 의무 위반은 물론 사찰관을 추방함으로써 사찰 수용과 협조라는 의무도 어긴 상태에서 핵무기비확산조약(NPT) 까지 탈퇴해 IAEA는 최악의 경우로분류하고 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이란의 경우엔 12-18년 전 부터 진행되어온 과거 우라늄농축 활동들을 신고하지 않은 점이 위반사항이지만 핵사찰은 수용했다. 이란은 우라늄 농축 활동이 핵연료와 기술 자급을 위해 필요하며, 어떠한 국제조약에도 위반되지 않는데다 미국, 일본, 프랑스 등 많은 나라들이 하고 있는데 유독 자국에만 중단을 요구하고 제재 위협을 가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IAEA 등 국제사회는 농축활동 자체는 합법이지만 이란이 과거 신고하지 않은 `전과(前科)' 때문에 이를 중단토록 권고하고 있으며 미국은 안보리 회부를 요구하고 있다. 한국 사안이 최악의 경우 안보리까지 가는 것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문가들이분석하는 것은 단순히 정치적 이유에서 뿐아니라 어찌 됐든 협정을 위반했다는 `국제법규적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 ◇ 무기급 핵물질 생산 표현 : IAEA 보고서에는 물론 우라늄이나 플루토늄과 관련한 부분 어디에도 무기급이라는 단어가 들어있지 않다. 우라늄의 경우 "0.2g의 농축 우라늄 235의 평균 농도는 10.2%이며, 78%인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기술적으로 우라늄의 경우 농축과정에서 연료봉에 레이저를 쬐는 실험을 반복하게 되는데 이 때 다양한 농도가 나올 수 있으며 "대체로 최고 농도는 큰의미가 없고 평균농도가 중요하다"는 설명하며 우리 당국의 해명도 이와 같다. 다만 농도 78% 우라늄이 이 과정에서 일부 생성된 것을 `준무기급'이라고 표현한 것을 사실과 전혀 다르다거나 의도적 왜곡이라고까지 비판하는 것은 우리 입장에선 취할 수도 있는 방법이지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IAEA 기준(별도 기사 참조)으로는 핵무기를 만들수 있는 양이냐와는 별개로 농도가 90% 이상이면 무기급으로 분류하고, 전문가나 특히 언론은 통상적으로 78% 정도의 농도는 준무기급이라고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플루토늄 부분은 해석하기에 더욱 애매한 점들이 있다. 연합뉴스가 입수한 IAEA보고서의 관련 부분 내용은 다음과 같다. "... 2004년에 한국은 조사(照射)된 소규모 연료봉 다발 속에서 0.7g의 플루토늄이 생성됐다고 보고했다. IAEA는, 생성된 플루토늄의 양이 플루토늄 239 동위원소농도 약 98%에 상당하는 급의 물질이었을 것으로 평가한다. (...ROK stated that 0.7g plotonium was produced in the eradiated mini assembly. The agency's assesment is that the amount of plotonium produced, would have been of the same orderof magnitude with an isotopic content of about 98% of PU-239....)" 우리 정부는 플루토늄의 양이 0.7g이고 순도가 98%라는 대목은 실제로 `분리추출(extract)'한 것은 아니며 다만 추출을 의도하지 않은 채 핵연료봉을 조사(照射)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을 IAEA가 이론적으로 계산한 추정치 일뿐이라고 설명한다. IAEA가 추출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생성(produce)'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점과 큰 틀에서의 내용상 이는 맞다. 하지만 영어 단어로는 같은 produce이지만 일반적으로는 우리 말의 생산이라는뜻으로 쓰인다. 또 현재까지 알려진 IAEA 보고서 내용은 "생성됐다면 ...인 것으로 추정한다"는뜻은 시사하지만 "추출하지 않았다"는 점이 명시적으로 언급돼 있지 않다. IAEA 보고서는 발표되는 것이 아니라 이사국들에만 배포되는 것이며, 원칙적으로 대외비다. 물론 이사국들이 많고 IAEA 사무국도 보안이 철저하지 못해 보고서가배포되는 순간 사실상 공개된 것이나 다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 당국은 물론 어느 나라나 8쪽 분량의 보고서를 공개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과 추출이 아닌 생성이라도 농도에 주목하고 무기급 물질 미량 생산이라는 표현을 언론이 쓴 것이다. 물론 외신의 경우 우리 처럼 절실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더 많은 고민을 안하고 쓰거나 입맛 대로 침소봉대하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 당국자가 해명에 급급해 이런 점을 지나치게 강조하거나 자신들도 역시 편의주의적으로 사실을 해석해 공식 설명하는 것은 장기적 국가이익에 도움이 되는 지 성찰해 볼 필요가 있는 것으로 지적된다. (베를린=연합뉴스) 최병국 특파원 choib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