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문식 이레전자 대표 ceo@erae.com > TV 드라마 '영웅시대'를 보면 해방 전·후부터 격동기를 헤쳐온 경영인들의 '기업가 정신'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지난주와 이번주에 방송됐던 고령교 건설공사 장면은 기업인이 가져야 할 기업가 정신을 잘 보여주고 있다. 건설자재 가격은 천정부지로 오르고 인부들의 임금에 대한 원성이 높기만 한데 자금마저 바닥난 상황. 주위 사람들은 공사를 부도처리하고 다른 사업이라도 살리자고 주인공을 설득한다. 그러나 그는 공사를 완공하는 것이 기업의 신뢰를 지키는 것이라며 무모하리만큼 강행,마침내 교량이 완공되고 회사도 성장하는 계기가 된다. 초창기 전선가공업을 했던 우리 회사가 자동차용 휴대폰 충전기와 핸즈프리 사업으로 전환할 때의 일이다. 당시 자동차용 충전기와 핸즈프리의 개발·생산 경험을 바탕으로 휴대폰 충전기를 만들어냈다. 문제는 판로였다. 대기업인 H전자에 팔아보겠다고 마음 먹었지만 막막했다. 담당부서가 어디인지도 몰라 H회사 정문 안내원에게 무턱대고 "충전기를 납품하려고 하는데 담당자를 연결해주세요"라고 말해 겨우 전화연결은 됐지만 담당자가 만나주질 않았다. 이런 상담에 이력이 났던 그에게 필자는 귀찮은 존재였을 것이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방문하기를 3개월. 마침내 단말기 개발팀 담당자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열심히 설명했지만 알려지지 않은 회사여서인지 신통치 않은 표정이었다. 샘플은 건네졌지만 테스트 해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상당 기간이 지난 후 테스트용 샘플을 다시 보냈지만 모두 허사였다. 이름없는 회사의 제품을 대기업에 납품하기란 하늘에 별 따기보다 힘들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일이 쉽게 풀리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품질에 대해서는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이 기회를 놓치면 다시 오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샘플테스트에 합격한 후를 가정해 상품 4천대를 미리 만들어 놓았다. H전자가 급히 필요할 경우를 대비했지만 불합격시엔 엄청난 손실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모험이었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 기존 납품업체가 규격에 맞는 제품을 공급하지 못해 다급해진 H전자 관계자가 우리회사를 찾았다. 반신반의하며 제품을 테스트한 후 담당임원이 "최대한 빨리 납품해달라"고 하자 "내일 당장 상품을 보내겠다"고 벅차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대답했다. 잊을 수 없는 감격의 순간이었다. 이 사건은 오늘날 매출액 2천억원대를 바라보는 최첨단 디지털 디스플레이 전문기업으로 성장하게 된 계기가 됐다. '영웅시대'란 드라마를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기업가로서 신뢰와 집념의 중요성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