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기업 등 민간부문은 부실 정리 등으로 대거 구조조정된 반면 정부부문은 되레 몸집을 확대,시장 활력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지적이 확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세금과 국민연금,각종 부담금 등이 경제규모나 성장 속도에 비해 빠르게 늘어나면서 민간 소비를 위축시키고,비대해진 정부조직과 재정 확대는 시장 효율을 떨어 뜨릴 뿐더러 민간기업의 투자기회 마저 줄이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비판은 최근 '여당의 내년 예산 추가 확대 추진' 대(對) '야당의 감세(減稅) 주장'과 맞물려 '큰 정부냐,작은 정부냐'의 논쟁으로까지 비화될 조짐이다. ◆팽창하는 정부 재정이나 공적연금 등 정부 부문이 본격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건 지난 98년 김대중 정부 때부터다. 외환위기 직후 붕괴된 경제기반을 추스르는 과정에서 재정의 역할이 강조된 데다 당시 정부가 '생산적 복지'를 내세워 복지예산과 공적연금을 크게 확대한 탓이다. 이로 인해 지난 1998년부터 2003년까지 5년간 경상 국내총생산(GDP)은 49.0% 증가한 반면 국세와 지방세를 합친 총조세는 74.1% 늘었다. 국민 한 사람이 낸 평균 세금은 67.4% 증가했다. 소득 증가폭보다 세금 증가분이 훨씬 더 컸다는 얘기다.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등 사회보장기여금은 더욱 급속히 늘었다. 세금과 사회보장기여금을 합친 국민부담금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국민부담률)은 지난 99년 21.5%에서 작년에는 25.5%로 4%포인트나 올라갔다. 지난 4년새 매년 1%포인트씩 상승한 셈이다. 각종 부담금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거둬들이는 부담금은 혼잡통행료 물이용부담금 개발부담금 등 모두 1백여개로 징수 규모가 지난 99년 4조1천7백72억원에서 지난해엔 8조8천1백93억원으로 4년 만에 두 배를 훌쩍 넘었다. 이에 따라 총조세와 각종 부담금을 합한 국민부담은 99년 98조4천억원에서 지난해 1백56조6천억원으로 59.1% 증가했다. 같은 기간 중 전 산업 평균 임금은 33% 오르는 데 그쳤다. 현 정부 들어 한국전력과 가스공사 등 공기업 민영화가 사실상 중단되고 공무원 수는 급증,정부 부문의 몸집 불리기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쪼그라드는 민간부문 정부 부문 확대에 따른 가장 큰 부작용은 가계와 기업 등 민간부문이 위축된다는 점이다. 세금과 연금부담 등이 늘면 가계가 소비에 쓸 수 있는 여유자금이 줄고,살림이 어려워진다. 그런 현상은 특히 저소득층일수록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올 1·4분기 중 도시근로자 가정 가운데 소득 최하위 20% 계층이 가처분소득에서 소비를 하고 남은 가계수지를 따져본 결과 24만8천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 99년의 적자폭(11만2천원)에 비해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난 것.최상위 20% 계층은 올 1·4분기 중 가계수지 흑자가 2백2만9천원으로 99년보다 51만원 늘어난 것과 대조적이다. 이에 따라 가계부채 부담은 계속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가계대출과 판매신용(외상구매)을 합한 가계신용은 작년 말 4백47조6천억원에서 올 6월 말엔 4백58조원으로 늘었다. 연말까지는 4백72조2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한은은 추정하고 있다. 이로 인한 가계 이자부담액은 지난해 말 37조4천억원에서 금년 말 39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올 들어 일부 국민들이 국민연금 납부거부 운동을 벌이고,최근엔 음식점 주인들이 세금부담 완화 등을 요구하며 집단행동에 나선 것은 정부부문 팽창에 따른 민간의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규제완화로 민간활력 되살려야 전문가들은 정부부문의 급속한 비대화를 우려하며 '구조조정'을 주문하고 있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경제학)는 "시장원리가 적용되지 않는 공공부문이 지나치게 커지면 그만큼 경제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며 "정부부문도 구조조정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또 "지금의 경기침체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정부가 나서서 투자하고,민간소비를 유도하겠다는 인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며 "경제는 어디까지나 가계와 기업 등 민간부문이 주도하도록 하고 정부는 그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여건만 만들어 주면 된다"고 말했다. 정기준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도 "공공부문 확대는 시장경제 원리에서 멀어지는 것"이라며 "정부는 규제완화를 통해 시장에 대한 정부 간섭을 줄임으로써 민간부문이 활력을 되찾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병석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