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의 약품인가, 죽음의 물질인가' 아편의 역사를 다룬 '아편, 그 황홀한 죽음의 기록'이 번역돼 나왔다(오희섭 옮김. 수막새刊). 영국의 소설가이자 역사기록 작가인 마틴 부스가 쓴 이 책은 그리스와 로마시대부터 중세와 근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아편을 둘러싸고 벌어진 갖가지 인간사를 조명하고 있다. 오늘날 아편은 아편전쟁이나 아편중독자, 범죄 등 부정적 이미지를 불러일으키며 마약물질로 분류돼 규제와 단속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불과 몇 세기 전까지만 해도 질병과 고통에서 인류를 구원해주는 만병통치약으로 널리 인식됐다. 1800년대에는 설사와 이질, 콜레라 등 인간의 목숨을 앗아가는 전염병의 특효약으로 이용됐다. 아편은 인류가 사용한 최초의 약품으로 인간문명 속으로 들어왔다. 기원전 3400년경 인류 최초의 문명인이었던 수메르인들은 양귀비를 '기쁨을 주는 식물'이라는 뜻의 '헐'(hul) 또는 '길(gil)'이라 부르며 양귀비를 재배하기 시작했고, 양귀비는 기원전 2000년 말까지 유럽과 중동, 북아프라카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죽은 사람에 대한 슬픔을 잊기 위해 아편을 복용했으며, 로마인들은 양귀비를 수면과 죽음의 상징으로 여겼다. 중세 스위스의 유명한 의사 파라켈수스는 아편을 '불멸의 돌'이라 찬양하며 우울증 환자와 궤양 환자를 치료하는 데 사용했다. 아편은 인류의 문화 창조에도 큰 기여를 했다. 셰익스피어와 월터 스콧, 찰스 디킨즈, 에드가 앨런 포, 장 콕토 등 문인들과커트 코베인, 보이 조지, 롤링 스톤즈 같은 연예인들은 아편의 몽환적 특성을 창작에 활용했다. 하지만 신비의 명약으로 인식되던 아편을 18-19세기 들어 사람들이 남용하면서중독되기 시작했고, 영국 등 제국주의 열강은 대포와 아편을 이용해 새로운 식민지를 건설하는 데 열을 올렸다. 이후 아편은 인류를 구원하는 신비의 물질이라기보다는 범죄조직의 손쉬운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되면서 범죄와 살인 등 무시무시한 사건을 연상시키는 금지물질로여겨지게 됐다. 저자는 "아편이 초래한 폐해에도 불구하고 아편은 수세기 동안 많은 사람에게위안을 주었다"며 "아편은 인간이 사용한 최초의 의학적 물질 가운데 하나였으며 많은 이의 고통을 잠재워주는 신의 선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424쪽. 2만1천원. (서울=연합뉴스) 서한기 기자 sh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