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소비.생활경제 1번지 '강남'이 휘청거리고 있다. 부자들 뿐만 아니라 유흥업소 종사자들,영세 대부회사,부동산중개업소,소형 학원에서부터 파출부에 이르기까지 이 지역에서 생계를 꾸려온 서민들의 주름살은 더 깊어지고 있다. 참여정부 들어 부동산시장규제 정책으로 재건축대상 아파트를 비롯한 강남 부동산시장이 직격탄을 맞은데 이어 EBS(교육방송) 수능방송이 사교육의 메카 대치동 학원가를 강타했고 최근 성매매 단속은 역삼동 등 유흥가에 찬바람을 몰고왔다. 룸살롱과 모텔 등 해당 업종뿐만 아니라 인근 미용실과 식당 편의점 콜택시 등 연관 업종까지 불황의 깊은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19일 서울시와 강남구청 서초구청 등에 따르면 50만원 이상 접대비 영수증제 실시,성매매방지특별법 시행 등의 영향으로 외환위기 때도 늘어났던 강남 지역의 룸살롱 등 유흥주점 수가 올들어 줄어들기 시작했다. 강남구와 서초구에 등록된 룸살롱 5백26개(9월말 기준) 중 올들어 업주가 바뀐 곳이 36.7%인 1백93곳에 달한다. 역삼동 월드부동산컨설팅 김대홍 이사는 "성매매 단속 이후 역삼동 일대에서만 매물로 나온 룸살롱이 20여개를 헤아린다"면서 "권리금은커녕 임대료를 수개월째 제대로 내지 못해 보증금을 거의 까먹은 업소들도 한둘이 아니다"고 전했다. 김 이사는 "외환위기 때도 볼 수 없었던 권리금 '제로' 매물이 즐비하다"고 전했다. 강남과 서초구의 8백34개(9월말 기준) 단란주점 가운데 3곳 중 1곳꼴인 2백53개가 지난 1년새 주인이 바뀌었다고 구청측은 밝혔다. 박선영 서초구 위생과장은 "개인파산 지경에 몰린 유흥업소 여종업원들이 늘어나면서 구청의 지원 및 구호제도에 관해 문의하는 전화가 상반기에 비해 배 이상 늘었다"고 밝혔다. 서울 논현동의 대형 룸살롱 웨이터로 일하는 박모씨(일명 박 과장)는 "피크인 금요일 밤조차 45개 룸 가운데 3분의 2 이상이 비어 있기 일쑤"라며 "업주는 월 7천만원이 넘는 임대료를 걱정하고 1백50명이 넘는 여종업원들과 웨이터,노래 반주자들은 생계를 걱정한다"고 하소연했다. 이 업소 옆에서 편의점을 10년째 운영해온 손창기씨(46)는 "장사를 시작한 이래 요즈음이 가장 힘들다"면서 "유흥업소를 떠나는 종업원들이 늘어나면서 야간 매출은 연초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고 하소연했다. 역삼동 일대 대리운전업소를 운영 중인 정기창 사장(29)은 "성매매단속 이후 룸살롱 모텔 등의 영업이 죽을 쑤면서 대리운전 고객이 절반 이상 줄었다"면서 "생계를 걱정하는 운전사들이 많다"고 말했다. 선릉역 부근에서 유흥업소 및 식당 종업원들을 주고객으로 영업 중인 P미용실 임영숙 사장(38)은 "'머리 손질할 돈도 못 번다'고 울상짓는 주점 아가씨들이 태반이어서 폐업 위기에 몰려 있지만 점포가 빠지지 않아 그만두기도 힘들다"고 밝혔다. 이 곳에서 대부업을 5년째 해온 박영도 사장(44)은 "업소 사장들이야 그동안 벌어 놓은 돈으로 아직은 버티지만 상가 청소부에서부터 파출부 등 업소 관련 서민들이 더 죽을 판"이라면서 "담보력이 약한 서민들을 상대로 하는 대부업도 줄부도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사교육 1번지로 통해온 강남 대치동 일대도 장기 불황으로 수강생들이 줄어드는 가운데 EBS 위성·인터넷 수능방송의 여파까지 겹치자 비상이 걸렸다. 유명 학원 강사의 강의를 수능방송을 통해 볼 수 있게 되면서 강북이나 수도권의 원정 수강생들은 자취를 감추었고 현지 수강생들도 격감했다. 강남 청솔학원 관계자는 "우리처럼 재수생 전문 대형학원은 버티지만 영세 학원은 줄줄이 문을 닫고 있다"고 밝혔다. 그동안 '강남 불패'로 불리며 경매까지 가지않고 시장에서 소화되던 고급 아파트 등 부동산 물건들도 경매시장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 낙찰률·낙찰가율 하락폭도 전국 평균을 웃돌아 강남 불황의 깊이를 실감나게 한다. 특히 성매매단속 직격탄을 맞은 모텔의 경우 경매물건 10개 중 1개 정도만 시가의 절반에 낙찰되고 나머지는 계속 유찰되고 있다. 송복 대치부동산랜드 사장은 "학원 등의 매물은 쌓이는데 찾는 사람이 없어 실거래가 두절된 지 1년이 다 됐다"며 "권리금 붙은 학원은 하나도 없다"고 설명했다. 김수언·이관우·송형석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