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 부총리가 지난 주말 "늦어도 12월엔 한국판 '뉴딜정책'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각종 개발사업이 내후년에나 시작될 예정이므로 '징검다리'격으로 내년 중 대규모 공공사업을 벌이겠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내년에는 경기가 더 나빠질 것이라는 걱정이 큰 상황이었으니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도 한편으론 개운치 않은 구석이 있다. 우선 왜 하필이면 '뉴딜'이라는 용어를 썼을까 하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 미국이 1930년대의 공황기에 취한 뉴딜정책은 테네시강유역개발공사(TVA) 같은 대규모 공공사업 외에도 부유세법 도입,획기적인 노동보호 입법 등 좌파적 정책이 골간을 이뤘다. 혹시라도 '한국판 뉴딜정책'이 향후 이런 방향으로 흐르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는 것은 기자만이 아닐 것이다. 현 상황을 '우파적 부총리가 좌파적 386세력에 포위당했다'고 보는 사람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미국에서도 뉴딜정책은 2기로 넘어가면서 좌파성향이 더 강해졌었다. 용어 선택에 대한 이런 우려를 기우로 치부하더라도 또 하나 걸리는 문제가 있다. 한국판 뉴딜정책이 과연 현 경제상황에 대한 근원적 처방이 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이 부총리는 얼마 전 한 포럼에서 "한국 경제는 우울증과 무기력증에 빠져 있다"고 진단했다. 이 진단대로라면 현 경제상황의 문제는 펀더멘털(fundamental)이 아닌 멘털(mental)의 문제다. 따라서 뉴딜정책류의 대규모 공공사업은 미봉책일 뿐 근원적 치유책이 못된다. 경제의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의사(정부)와 환자(민간 경제주체)의 대화다. 정부는 기업들이 투자에 나서지 못하는 이유가 뭔지,개인들이 왜 지갑을 열지 않는지 진솔하게 얘기를 나눠봐야 한다. 그래야 종합적인 처방이 나올 수 있다. 그동안 한국의 경제 상황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정부와 기업 간에는 진솔한 대화는커녕 불신의 골만 깊어졌다. 국민토론회다 뭐다 해서 행사는 자주 열렸지만 속 깊은 얘기들은 오가지 않았다. 여기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책임도 컸다. 민간에서 제기하는 '경제 위기론'을 '정권 흔들기 음모'로 인식하는 상황에서 무슨 진솔한 얘기가 오갈 수 있었겠는가. 토론회를 해봐야 서로 덕담이나 주고받다 정부가 기업들에 이런 저런 협조를 당부하는 식으로 끝나기 일쑤였다. 이런 점에서 이 부총리가 구상하는 한국판 뉴딜정책은 '뉴딜'이라는 용어보다 '한국판'이라는 부분에 강조점이 두어져야 한다. 한국의 현 경제상황에서 가장 시급한 민간 경제주체들의 '우울증 치료'에 초점이 두어져야 한다는 얘기다. 맬서스의 인구론은 경제학에 '우울한 학문(dismal science)'이라는 별명을 안겨주었다.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나지만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따라서 자연대로라면 과잉인구로 인한 식량부족을 피할 수 없다"는 인구론의 암울한 결론에 동시대의 사상가 T 칼라일이 붙여준 별명이다. 칼라일의 수사학을 잠시 차용하자면 요즘 한국의 경제기자들은 '우울한 언론인(journalist)'이 된 느낌이다. 취재하는 내용이 우울하다 보니 기자들도 우울증에 전염됐다는 얘기다. 한국판 뉴딜정책이 성공을 거둬 경기가 활기를 되찾고 기자들도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임 혁 금융부장 limhyu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