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이 지난 2002년 엘테크신뢰경영연구소(소장 이관응)와 함께 "훌륭한 일터상"을 제정했을 당시 가장 큰 관심사는 "훌륭한 일터란 도대체 어떤 곳인가"였다. 올해까지 3회째 진행해오면서는 관심이 "이런 훌륭한 일터들의 베스트프랙티스(best practice:성공 사례)를 어떻게 하면 다른 기업들에 전파할 수 있을까"로 넓어졌다. 최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엘테크신뢰경영연구소 회의실에서 가진 "훌륭한 일터 만들기" 좌담회의 목표도 그랬다. "2004 대한민국 훌륭한 일터상"에서 대상을 받은 LG석유화학의 김반석 사장과 금상을 수상한 한국서부발전의 김종신 사장에게서 "그들만의 비결"을 듣고자 했다. 이들이 밝힌 비결은 솔선수범,믿음성,커뮤니케이션 활성화 등 몇 단어로 쉽게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훌륭한 일터"(GWP:Great Workplace)운동 창시자 로버트 레버링 박사가 힌트를 주었다. 그는 "훌륭한 일터의 비결은 직원들이 타고난 재능(gift)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리더십"이라고 말했다. [ 참석자 ] 김반석 LG석유화학 사장 김종신 한국서부발전 사장 로버트 레버링 박사("훌륭한일터" 운동 창시자) 권영설 한국경제신문 가치혁신연구소장(사회) -------------------------------------------------------------- ▲사회='훌륭한 일터'라고 하면 왠지 종업원 모두가 같은 대우를 받는 회사처럼 느껴집니다. 따로 핵심인재를 구별해 양성하는 프로그램이 있는지요. ▲김반석 LG석유화학 사장=특별히 성과가 좋은 개인들(HPI:High Performance Individuals)을 뽑아 육성하는 프로그램을 갖고 있습니다. 글로벌 차원에서 경쟁하기 때문에 핵심인재는 반드시 필요하고 회사는 장기계획 아래 그런 사람들을 길러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해당 핵심인재들이 심적 부담을 갖거나 나머지 인력들이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시스템을 잘 짜야 한다는 점입니다. 누구나 열정을 갖고 열심히 하면 핵심인재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두고 있습니다. ▲김종신 한국서부발전 사장=열심히 노력해 좋은 실적을 올리는 사원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회사의 의무입니다. 별도로 핵심인재만을 양성하는 프로그램은 갖고 있지 않지만 우수 인재들에게 국내외 비즈니스스쿨 등에서 교육받을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사원교육의 기반은 바로 인간존중입니다. 능력을 인정해 주고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자부심이 높은 상태라면 오히려 객관적인 성과주의 인사가 더욱 동기를 부여한다고 생각합니다. ▲레버링 박사=미국의 경우는 대체로 핵심인재와 비핵심인재를 위한 프로그램을 구분하지 않고 모든 직원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개인을 스타로 만들기보다는 모든 직원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모든 구성원들이 조직 내에서 얼마나 원활하게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가에 중점을 두고 있지요. ▲사회=교육프로그램이 똑 같다면 하향평준화의 우려도 있는 것 아닌가요. 우수한 인재들에게는 오히려 불만요인이 될텐데요. ▲김반석 사장=그럴 우려가 있긴 합니다만 그 문제도 교육 프로그램만으로 해결할 필요는 없습니다. 보상제도를 통해 핵심인재들에게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방법은 많습니다. 실적과 연계해 연봉을 차등적으로 지급하고 있는데 이것이 누적되면 핵심인재는 자연스럽게 더욱 열심히 하려는 동기를 가질 수 있는 겁니다. ▲레버링 박사=실적 좋은 스타보다 중요한 것이 대다수를 이루는 평범한 구성원들입니다. 현대 기업 사회의 개인들은 사실 여러 압박에 시달립니다. 대표적인 게 다기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기업들이 규모를 줄이는 다운사이징(down-sizing)을 하면서 남아있는 사람들은 이전에는 남들이 하던 일도 자기가 맡아 몇개씩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야 합니다. 이런 외적 변화가 피할 수 없는 것인 만큼 경영진과 구성원들이 당면 문제에 관해 솔직하게 터놓고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합니다. 교육 과정도 이런 압박을 덜어주는 방향으로 짜여야겠지요. ▲사회=다운사이징은 아니지만 지난 7월부터 주5일 근무제가 본격화되면서 국내 근로자들도 비슷한 압박에 시달리고는 있습니다. 줄어든 시간만큼 더 많이 일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사실 근로시간 축소로 생산성 저하가 우려되는 만큼 회사로서도 그런 요구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지요. ▲김종신 시장=줄어든 시간 이상으로 열심히 일하는 것이 방법입니다. 발전소를 제외한 모든 부서에서 주5일 근무제를 실시하고 있는데 서너달 시행하면서 근무강도가 자연스럽게 높아졌습니다. 회사가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모든 부서가 '집중근무제'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하루 3시간은 전화도,방문객도 받지 않고 일만 합니다. ▲김반석 사장=우리 회사에선 수년 전부터 토요휴무제를 실시해 왔기 때문에 갑작스런 변화는 없습니다. 회사로서는 아무래도 인건비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지요. 주40시간 근무제를 실시하면서 일부 직원들의 노동강도가 올라갔지만 충분히 보완해 나갈 수 있는 수준입니다. ▲사회=노동강도를 높여가면서 이왕이면 새로운 기능도 배울 수 있다면 회사나 개인이나 득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은퇴 이후를 생각해 보면 더욱 실감나지요. 교육과정 중 구성원들의 퇴직 이후를 준비해 주는 프로그램도 포함돼 있는지요. ▲김반석 사장=경영자들은 사원들의 마음이 이제는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회사는 잘 되는데 개인은 성공하지 못하는 식을 이제는 더 이상 참지 않습니다. 개인들도 교육받을 때 회사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자기 능력도 늘어난다고 생각할 때 더 열심히 일하는 겁니다. ▲김종신 사장=퇴직 하기 1년 전부터 다른 직업이나 사회 생활에 적응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수십년을 한 회사에서 근무하다 아무 준비없이 퇴직하게 되면 낭패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친정'으로서의 역할을 회사가 할 수 있도록 신경쓰고 있습니다. ▲레버링 박사=퇴직 이후는 사실 개인적인 문제이긴 합니다. 존슨앤드존슨(J&J) 같은 회사들이 퇴직자클럽을 만들기도 하지만 보통의 경우는 직장에서 쌓은 전문적인 노하우를 활용해 컨설팅회사를 창업하는 등 개인들이 준비하고 있습니다. ▲김반석 사장=훌륭한 일터란 편안한 곳이 아니라 각 구성원들이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훌륭한 일터가 다양한 이벤트나 프로그램만 갖춘 곳으로 인식되는 건 아주 잘못된 것이지요. 자기가 일하는 회사가 업종에서 1등이 되고 그에 더해 자신도 1등이 돼야 자부심이 생기는 것이지요. 이런 풍토 속에서 일하면 회사도 성공하고 개인도 퇴직할 때 쯤에는 자연히 능력을 갖출 수 있게 됩니다. ▲사회=두 사장님 얘기를 들어보면 회사의 역할과 구성원을 보는 시각이 여느 경영자와는 크게 다른 것 같습니다. 역시 훌륭한 일터도 리더의 역량과 자세,능력에 달린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레버링 박사=그렇지요. 훌륭한 일터의 세가지 조건인 신뢰,자부심,재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신뢰는 리더에게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리더가 일터의 신뢰 수준을 높이고 그런 리더가 열린 커뮤니케이션을 활성화할 때 회사 전체가 자부심과 재미가 넘치는 조직이 되는 것이지요. ▲김종신 사장=훌륭한 일터를 만들기 위해선 직원들에게 다가가는 소탈한 면도 필요하지만 카리스마적인 리더십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변화를 싫어하는 직원들이 목표를 향해 일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 앞에서 당기는 힘도 필요한 것이지요. ▲김반석 사장=리더십의 기본은 열정(passion) 아니겠습니까. 여기에 하나 더하면 애정 혹은 연민(compassion)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구성원들이 어떤 재능을 갖고 있는지를 찾아 그것이 더 잘 발휘되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지요. ▲사회='훌륭한 일터'운동의 창시자로서 한국 일터의 변화상을 어떻게 평가하고 계신지요. ▲레버링 박사=훌륭한 일터 개념을 하나의 유행이 아니라 기업문화적인 면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 아주 인상적입니다. 신뢰경영지수(TI:trust index)가 높아지고 있어 고무적입니다. 다만 선진국에 비하면 이 점수가 여전히 평균 수준에 불과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한국 사회 전반에 불신풍조가 여전히 만연해 일터에 영향을 주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경제위기 이후 또 다시 침체기를 맞아서인지 모르겠습니다. 사회 전체가 신뢰를 높여 나가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일터도 더 훌륭하게(great) 되는 것이지요. 정리=송대섭 기자 dss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