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체된 경기를 살리기 위한 '한국판 뉴딜정책'이 현 정부에 의해 검토되고 있다. 구체적인 내용은 12월에 내놓겠다는 계획이다. 뉴딜정책은 '찰리 채플린'으로 상징되는 1930년대의 혹독한 경기 침체 국면을 극복하기 위해 미국 대통령인 루스벨트가 추진한 일련의 정책을 말한다. 당시 미국을 비롯한 세계경기는 유효 수요가 절대적으로 부족함에 따라 물가와 성장률이 동시에 급락하는 디플레이션과 대규모 실업으로 대변되는 대공황 국면에 처했다. 뉴딜정책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것은 케인스다. 이전의 주류경제학이었던 고전학파와 구별되는 케인스 이론의 특징은 △상품시장에서 금리에 대해 소비와 투자의 비탄력성 △화폐시장에서 투기적 수요와 유동성 함정 △노동시장에서 근로자의 화폐환상과 임금의 하방경직성이 존재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케인스가 소비와 투자가 금리에 민감하지 않다고 보는 것은 경제주체들의 심리적 요소를 중시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통화공급을 늘려 금리를 내린다 하더라도 일반 국민들과 기업들이 미래를 불확실하게 느끼면 소비와 투자가 늘어나지 않는다고 보았다. 또 미래가 불확실하면 경제주체들은 지금은 아무런 수익이 보장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투기적으로 화폐를 보유한다고 주장했다. 극단적으로 금리가 더 이상 내려가기 어려울 때까지 낮아졌을 경우에는 통화공급을 늘리더라도 금리 하락으로 이어지지 않는 유동성 함정에 처한다고 본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한편 근로자들에 대해서는 수집할 수 있는 정보가 제한돼 있기 때문에 인플레를 감안한 예상 임금만큼 실제 임금을 조정하지 못한다는 화폐환상에 젖어 있다고 보았다. 반면 근로자들은 노조 결성 등으로 단기적으로는 명목임금이 하락하는 것을 용납지 못하는 하방경직성을 강조했다. 한 나라 경제가 케인스적인 상황에 놓여 있을 때에는 통화정책은 무력화된다. 반면 재정정책의 효과가 크다는 것은 '정형화된 사실(stylized fact)'이다. 결국 뉴딜정책은 케인스 이론의 실천물이다. 뉴딜정책은 크게 3기로 구분된다. 1933년에서 1934년까지 제1기에는 인플레이션에 의한 물가 수준 회복에 역점을 뒀다. 1935년 이후 제2기에 와서는 정부가 공채를 발행해 민간의 유휴자금을 끌어들여 대규모 사업을 벌였다. 1939년 이후 제3기에는 유효 수요 부족을 적자지출을 통해 보전하는 보정적 재정정책을 추진했다. 우리는 어떤가. 아직까지 유동성 함정에 처해 있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금리 수준이 낮은 데다 금리를 내리더라도 소비와 투자가 늘지 않고 있다. 명목임금은 그 어느 국가보다 하방경직적이다. 얼핏 보기에는 케인스적인 상황과 유사하기 때문에 현 정부가 한국판 뉴딜정책을 구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문제는 얼마나 효과가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최근 우리의 경기 침체는 1930년대처럼 유효 수요 부족 때문만은 아니다. 경기상황은 디플레보다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우려되고,실업문제는 '고용없는 경기회복'이 일반화됐다. 특히 제도적인 틀이 자주 바뀜에 따라 경제주체들이 미래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없는 것이 주요인이다. 이 문제가 전제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판 뉴딜정책을 추진할 경우 주수단이 될 재정정책은 구축(驅逐·crowding-out) 혹은 구인(驅引·crowding-in)효과가 나타나 현 정부의 입지가 더 좁아질 수 있다는 점도 함께 인식해야 한다. 논설·전문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