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학은 "붕어빵"이라고 불릴만큼 거의 유사한 수십개의 학과를 "백화점"식으로 개설,운영하고 있다. 또 정부 통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보니 교육과정 운영에 차별성이 없고 학생 선발기준도 비슷해 "입시지옥" 및 대학 서열화를 가져왔다. 이런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우수한 학생을 뽑으려다보니 "고교등급제"의 파문이 불거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에 따라 정부 규제를 풀어 대학별 특성화를 앞당기면 학생선발 방식이 다양화돼 대학 서열뿐 아니라 고교등급제와 같은 부작용도 없어질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특성화가 '입시구조' 깬다=대학들이 스스로의 특수성이나 지역과 연계된 특화분야를 위주로 차별화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한다면 입학전형도 다양화 전문화 특성화될 수 있다. 성적보다는 특성화된 분야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학생을 뽑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학 특성화는 자율성과 연계돼 있다. 자율성이 없다면 개별 대학의 특색있는 교육목적 추구가 어려울 뿐 아니라 특성화된 학생을 뽑기도 어렵기 마련이다. 성태제 이화여대 교무처장(교육학과 교수)은 "대학이 전형방법에 자율성을 가질 수 없는 상황에서 특성화된 전형제도를 실시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며 "대학이 특성화되고 전형이 다양해지려면 전형 방법을 개발하고 선택할 수 있는 권한과 책임이 전적으로 대학에 맡겨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학이 백화점식 경영을 계속한다면 국제경쟁력 확보도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다. 제한된 자원으로 모든 분야의 경쟁력을 동시에 끌어 올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대학마다 전형방법 달라야=특성화를 위해선 대학의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 최근 대학들은 특성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이현청 대학교육협의회 사무총장은 "대학들이 특성화하지 않으려고 해도 특성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우수 대학은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나머지 대학들은 생존을 위해 특성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특성화가 말처럼 쉽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필요성은 느끼지만 내부적 합의가 안 돼 특성화 분야를 20여개나 내세우는 대학들도 있다. 또 자율적으로 비교우위 분야를 특성화하기보다 정부의 특성화 지원사업에 맞춰 '끼워 맞추기식' 특성화를 추진하는 경우도 나오고 있다. 이와 함께 특성화에 따른 입학전형 다양화를 위한 준비작업도 필요하다. '입학사정관제도' 등을 통해 독자적 전형방법을 체계적으로 연구해야 한다. ◆대학이 바뀌면 고교도 특성화돼=대학 입시와 고교 교육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대학과 대입 전형이 다양화되면 초·중등 교육도 특성화될 수 있다. 이종재 한국교육개발원 원장은 "대학들이 입학정원의 30%라도 수능이나 내신은 지원 자격으로만 보고 전공영역별로 독특한 역량을 발휘하는 학생을 뽑는다면 고교도 그에 맞춰 독서,실험에 주력하는 등 나름대로 특성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현재는 특성화고교도 문닫아야 할 판이다. 애니메이션 요리 등 각종 특성화고에선 수능 과목을 집중적으로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관련 대학에 가려는 학생들이 이들 특성화고교를 피해가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고세연 미림여자정보고 교장은 "현행 대입제도는 영어와 수학을 잘 하는 학생만을 선발하는 방식"이라며 "점수를 잘 받고 싶은 학생이라면 전문화된 분야에 관심을 가질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김현석·송형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