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대표적 석학인 기 소르망 박사는 지한파다. 그의 저서가 발간 될 때마다 국내에서는 늘 베스트셀러의 대열에 올랐고 그 자신도 10여년간 해마다 한국을 찾았다. 최근 창간 40주년 인터뷰를 가졌다. 약속시간보다 10분 늦게 도착한 그에게 어디를 다녀왔느냐고 물었더니 "두어시간 동안 서울 뒷골목을 헤맸다"고 답했다. 세계를 여행할 때면 해당국 국가원수들로부터 VIP 대접을 받지만,그 나라를 보다 더 잘 알기위해선 빌딩숲 이면에 숨겨진 지저분하고 시끌벅적한 시장 거리를 꼭 가봐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대담 = 유영석 기자 ] 한 시간이 넘는 인터뷰 내내 그가 줄기차게 강조한 것은 '인간의 자유'였다.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정치·경제 체제야말로 종국에는 승리를 거둔다는 게 그의 일관된 주장이었다. 아카데미즘에 매몰되기 싫어하는 성격으로 인해 경제 철학 언론 정치 문화계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활동하게 됐다는 그는 "보다 많은 국민들이 삶의 자유를 느끼는 국가가 진정한 선진국"이라고 말했다. -전 세계적으로 반미감정이 고조되고 있는데 그 원인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프랑스나 한국 어디서든 반미주의는 하나의 '산업(industry)'처럼 돼 버렸습니다. 반미감정을 드러내면 대중들로부터 손쉽게 인기를 얻을 수 있지요. 따라서 정치인 학자 등 거의 모든 지식인 계층 사람들이 반미감정을 공공연히 표출합니다. 특히 국가 지도자의 반미감정은 철저히 내수용에 불과하며 국가 전체로는 손해를 주게됩니다." -미국을 싫어하지만 미국 이민자는 늘어나는 것은 왜일까요. "프랑스인이 한국으로 이민을 오기는 힘이 듭니다. 마찬가지로 한국인이 프랑스에서 이민자로 살아가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프랑스인이든 한국인이든 누구나가 미국 이민은 가능하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흡수해서 미국식으로 바꿔버리는 하나의 '용광로(melting pot)'인 미국 문화야말로 강력한 국가 경쟁력이라는 얘기입니다. 냉전 이데올로기가 사라진 지금 '자유와 민주'라는 이념으로 포장된 미국산 문명은 전 세계를 뒤덮고 있습니다. 좋든 싫든 오늘날 우리가 소비하는 대부분이 '미국산(Made in USA)'인 현실에서 극단적인 또는 감정적인 친미나 반미를 넘어 미국을 바로 아는 일이 우선시돼야 할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한국보다 반미감정이 더 심한 프랑스에서도 미군 철수 주장은 좀처럼 들을 수가 없습니다. 독일 등 유럽 전역에 주둔해 있는 미군은 유럽 내 '힘의 균형점'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국민들은 미군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유럽지역에서 미국은 밉든 곱든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죠.미국을 대체할 세력이 없는 상황에서 미군이 떠날 경우 아시아에는 위기가 닥칠 가능성도 있습니다." -미국을 대체할 초강대국으로 중국이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급성장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선진국들보다 늦게 경제 발전을 시작한 '후발주자(late starter)'이기 때문에 선진국들이 개발해 놓은 기술을 충분히 활용해 빠른 성장을 보이는 것도 당연합니다. 문제는 이 같은 발전이 상당히 인위적이라는 데 있습니다. 중국 경제의 발전은 값싼 노동력과 외국인직접투자(FDI)가 이끌고 있는데 여기에는 위기 요소가 많습니다. 중국의 경제성장 전망치는 너무 과장돼 있고 관련 통계 또한 거짓 투성이라는 게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국가통제 시스템이 강한 중국에서는 사회 불안이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그만큼 투자에 따른 위험감수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의 붕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남북한 관계에서 남한 정부는 이중적인 자세를 견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북한의 김정일 정권은 결코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국가 안보에 대한 철저한 대비 태세를 갖춰야 합니다. 국민을 굶주리게 만든 북한 정권은 조만간 갑작스러운 붕괴를 겪을 것이 분명합니다. 북한의 갑작스러운 붕괴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 놓는 일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개성공단 사업 등 남북한 교류 강화를 통해 북한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끌어내는 일을 남한 정부는 꾸준히 추진해야 합니다. 북한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경험하게 해야 통일의 충격도 줄어들 것입니다." -독일 경제는 통일 후유증으로 지금도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한국이 배워야 할 교훈은 무엇이라고 보는지요. "독일은 실직을 하더라도 국가로부터 실업수당을 받아 생활할 수 있기 때문에 근로의욕이 그 어느 나라보다 저조합니다. 통일 후 독일은 동독지역에 대해서도 사회보장제도를 확대했고,그 결과 일하려는 사람보다는 일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더 많이 양산했습니다. 남북한이 통일되면 북한지역 주민들에게 일해야 하는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남한 사람들보다 더 열심히 일해야 더 큰 경제적 자유를 얻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가르쳐야 한다고 봅니다." -한국 경제가 성장 엔진을 잃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삽니다. 기업이 발전해야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됩니다. 기업가 정신을 북돋우는 일은 국가가 해야할 몫입니다. 우수 인재들의 창의성을 최대한 유도할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을 완비하고 경쟁적인 국내시장을 조성하기 위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기업인들의 의욕을 꺾고 교육제도를 경직된 상태 그대로 유지한다면 한국은 장기 불황을 겪었던 일본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습니다." -지난해 방문하셨을 때 한국의 국가 브랜드 홍보를 강조하셨는데. "유럽인들은 한국은 몰라도 삼성 현대 LG는 잘 알고 있습니다. 기업이 한국이라는 나라를 널리 알리고 있는 실정입니다. 반면 한국의 이미지는 6·25전쟁과 남북한 분단이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강합니다. 국가 이미지가 기업의 브랜드 가치 제고에 오히려 방해가 되고 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한국도 우수한 문화유산을 바탕으로 한 문화적 부가가치 창출에 힘을 쏟을 때입니다." yooys@hankyung.com -------------------------------------------------------------- [ 한경 창간 40돌 축하 메시지 ] 한국경제신문의 창간 40주년을 기념하여 귀사의 번영과 지속적인 진실의 추구를 기원합니다. 진실의 추구 없이는 자유와 번영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기 소르망 200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