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형표 < 얼라이언스 파트너즈 대표 >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9월9일 '
삼익악기가 영창악기를 인수할 경우 업라이트 피아노 기준으로 시장 점유율이 92%를 점하게 되고 업라이트 피아노는 전체 피아노 시장의 70%를 넘어 시장지배력을 남용할 가능성이 매우 크므로' 삼익악기가 취득한 지분을 1년 안에 제3자에게 처분하도록 명령했다.
그리고 며칠 후 영창악기는 부도가 났다.
어느 한 기업이 생산하는 제품이 국내 시장에서 독과점을 형성하게 되면 가격을 쉽게 올릴 수 있는 힘이 생기고 이는 결국 소비자의 부담 증가로 이어지기 때문이라는 공정위의 판단이었다.
그런데 음악시장은 과연 공정위의 이같은 판단을 수용할 수 있을 것인가.
우선 클래식 듣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고 이미 15년쯤 전부터 어린이 어른 할 것 없이 컴퓨터에 마음과 시간을 빼앗기면서 힘든 피아노를 공부하는 인구도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그 결과 국내 업라이트 피아노 판매수량은 해마다 줄고 있다.
영창이나 삼익 같은 악기회사는 자연히 시장을 외국에서 찾아야 하고 디지털 피아노를 비롯한 전자악기를 개발하는 경영 전략을 채택할 수밖에 없다.
글로벌 시장에서의 최상급 피아노로는 프로 연주자들이 사용하는 스타인웨이가 버티고 있고,다음으로 야마하가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두 주자(走者) 영창과 삼익이 만들어 수출하는 피아노는 이제 10년이 넘게 야마하를 사기에는 돈이 부담스러운 개인이나 기관을 파고들어 미국의 주요 백화점 홀에 놓여져 그곳을 찾는 고객들에게 생음악을 선사하는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피아노나 전자악기 시장을 파고 들어가는 것은 한국 자동차가 처음 해외시장을 개척하던 시절 일본과 유럽의 자동차가 장악하고 있는 시장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힘들다.
야마하가 자동차의 도요타나 닛산보다 더 힘센 공룡급 회사이기 때문이다.
야마하 악기는 계열사가 59개나 되며 그룹의 연간 매출액이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6조원,순이익은 약 5천억원에 달한다.
매출로는 영창과 삼익을 합한 2천억원의 30배 규모이고 (삼익 하나만 본다면 50배),이익 규모는 영창이 최근 수년간 적자이므로 아예 비교 대상이 되지 않는다.
야마하는 해마다 유망 젊은 피아니스트를 야마하 아티스트라는 칭호를 부여하면서 포섭(?)함으로써 제품의 성가를 키우고 있다.
일본 국내시장에서의 시장 점유율이 거의 독점이라는 점은 설명할 필요도 없다.
이러한 공룡과 싸우려면 우리의 주자들을 좀 더 강한 체질로 만들어 내보내야 되지 않겠는가.
연간 2만대도 팔기 어려운 국내 시장에서 시장 점유율을 따져 독과점의 피해가 우려된다고 해서 이미 다 된 거래를 파기시켜 다시 야마하의 50분의 1이 되는 규모로 축소시켜 놓는다면 수출을 원천 봉쇄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국내 피아노 시장은 이미 사양산업이다.
이 작은 시장에서 한 기업이 시장 점유율이 90% 가까워진다고 한들 가격을 함부로 올릴 수 있을 담력(膽力)이 있을 것인지 지극히 의문시 된다.
조금만 값을 올리면 피아노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보다 좋은 야마하 중고품을 살 것이 뻔하다.
시장은 공정위가 걱정하듯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피아노는 소주와 같은 대중 소비제품이 아니라 중산층이 까다롭게 선택하는 제품이다.
국내시장에서의 독과점 피해가 우려돼 이미 인수한 기업의 지분을 팔아야 한다면 누가 이 회사를 삼익이 지급한 가격으로 살 것인가.
수익을 발생시키지 못하는 기업은 자산 규모가 얼마가 되더라도 별 가치가 없다.
오직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기업가만이 기업가치를 올릴 수 있다.
이 역할을 삼익이 해 보도록 허용하지 않는다면 누가 해 낼 수 있을 것인가.
쌍용자동차나 인천정유 같이 또다른 중국업체를 기다릴 것인가,아니면 차라리 야마하에 넘길 것인가.
오늘날 한국 기업의 경영환경은 너무 답답하다.
이런 엄격한 법률적 판단이 기업인을 주눅들게 하고 투자를 못하도록 만든다.
한편에서는 '기업이 국가'라는 말을 하고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