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미국이나 유럽 선진국에 비해 가장 낙후된 산업은 금융업입니다. 금융업 개혁없이 경제 회복은 불가능합니다." 얼마전 만난 경제학계 원로인 이시 히로미츠 히토츠바시 대학총장은 "일본 제조업은 여전히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금융업 경쟁력이 높아져야 일본경제의 부활이 가능하다"고 진단했다. 총리 자문기관인 정부세제조사회 회장직도 맡고 있는 이시 총장은 "고이즈미 내각은 금융업의 개방과 자유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해 구조개혁의 대미를 장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본 금융산업 재편의 핵심은 역시 증권산업 육성이다. 일본정부가 가장 먼저 메스를 댄 것은 증권사의 전업의무 폐지. 증권 중개업만 하도록 한 규정을 없애버리고,업무영역을 대폭 확대했다. 증권사는 금융선물업이나 상품거래업은 물론 보험모집까지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이를 통해 은행과의 불균형을 해소하겠다는 복안이다. 증권사의 업무영역 확대와 동시에 수수료 자율화도 허용됐다. 두 가지 환경변화는 증권사 간의 '진검' 승부를 유도했다. 업무영역에 제한이 없어지면서 창의적인 상품 개발이 가능해진 데다 수수료까지 경쟁을 하게 돼 능력있는 회사만이 살아남는 환경이 만들어진 셈이다. 이는 증권사 전문화라는 결과물을 이끌어냈다. 대형증권사는 은행 등과 손 잡고 자산운용과 기업금융 분야에 힘을 쏟고,중소형 증권사는 대형은형과의 통합을 통해 소매업무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온라인증권사는 수수료 경쟁보다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쪽으로 생존전략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렇다고 일본 정부가 증권사를 일방적으로 보호 육성하는 것은 아니다. 증권 중개업 자체를 개방,개인이나 일반 법인도 증권 중개를 할 수 있게 했다. 물론 은행 등 다른 금융회사도 증권 중개업 참여가 허용됐다. 지난달 13일 이후 집 근처 편의점 로손에서 주식매매가 가능해진 것이다. 도요타자동차 대리점에서도 내년부터는 주식을 사고팔 수 있게 된다. 이는 일본정부가 갖고 있는 '저축우대에서 투자우대로의 전환'이란 철학에서 비롯된다. 제도를 고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투자자 유인을 위해 배당이나 양도 등에 붙는 세금도 20%에서 10%로 줄였다. 은행도 구조재편 바람에 휩싸여 있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97년 홋카이도 타쿠쇼쿠은행의 도산을 계기로 파산회사가 속출하자 올해 초 미즈호,미쓰비시도쿄,UFJ,미스이스미토모 등 '빅4' 은행그룹을 중심으로 통합,재편했다. 90년대 중반 16개 대형은행이 4대 은행그룹으로 바뀐 것이다. 최근 미쓰비시도쿄은행과 UFJ은행도 내년 10월까지 통합키로 합의해 메가뱅크화 바람은 더욱 가속화되는 양상이다. 일본 금융산업은 정부의 확고한 원칙 아래 발전적 재탄생의 과정을 착실히 밟고 있는 것이다. 도쿄=최인한 특파원 jan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