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이 종합재산관리신탁제를 도입하면 증권사 일임형 랩어카운트는 끝장난다'


증권업계가 신탁업법 개정(5월4일 입법예고)을 앞두고 떨고 있다.


종합재산관리신탁제도가 시행되면 증권사의 자산관리상품인 일임형 랩어카운트는 급속히 위축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종합재산관리신탁은 일임형 랩과 개념은 유사하나,포괄주문이 허용되고 성과수수료도 받을 수 있다.


특히 은행이 상속 증여 대행 서비스까지 할수 있어 랩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쑥스러울 정도다.


"그마나 증권에서 내세울 수 있는 상품인 랩어카운트가 고사위기를 맞지 않을까 걱정된다"(홍성일 한국투자증권사장)는 우려가 나올만도 하다.


증권업계 회생의 발목을 잡는 것은 은행의 영역확장 뿐만이 아니다.


정부의 '빗장규제'는 더 큰 걸림돌이다.


A증권이 장외파생상품인 ELS(주가지수연계증권)를 내놓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면 여실히 드러난다.


A사는 증권거래법 시행령이 개정된 2002년 2월 ELS를 만들었지만 증권업감독규정이 개정될 때까지 5개월간 취급인가 신청을 미뤄야 했다.


이후 인가신청을 내고 8월 인력,전산시스템,리스크 관리,내부통제 실태 등에 대한 현장실사를 받아 그해 10월 인가를 받았다.


그렇지만 첫 상품(공모상품 기준)은 지난해 4월에야 선보일 수 있었다.


금감원이 세부지침을 마련할 때까지 6개월을 또 다시 기다린 것이다.


증권업계가 시간을 허비하는 사이 은행은 5개월전인 2002년 11월 '유사품'인 ELD를 선보여 시장을 선점했다.


재경부 고시로 손쉽게 업무인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최근 증권사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선박 펀드'도 지난 4월 첫 선을 보이기까지 6개 관련부처의 인·허가를 받느라 7개월이나 소모했다.


증권·투신업계에 대한 정부규제는 거의 '칸막이'식이다.


은행법은 고유업무의 범위를 시행령에 열거하고 장외파생상품 취급같은 부수업무는 재경부 고시사항으로 정해 규제가 거의 없는 편이다.


하지만 증권사 고유업무는 법률에 나열된 '유가증권에 대한 업무 8가지'에 한정되며 장외파생상품 투자자문 등의 겸업 및 부수업무는 시행령을 일일이 고쳐야 가능하다.


증권사는 선물 및 자산운용업을 겸업할 수 없지만 은행은 보험판매는 물론 유가증권인수 자기매매 중개업무 등 타영역의 고유업무까지 할 수 있다.


"자본시장 규모에 비해 은행이 비대칭적으로 비대한 은행 중심국"(신보성 증권연구원 연구위원)이라는 평가가 나올 만도 하다.


전문가들은 금융권역간 불균형 심화로 자본시장이 위축되면 중소·벤처기업의 도태와 첨단 성장산업의 몰락 등 심각한 부작용이 야기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김형태 증권연구원 부원장은 "장외파생상품은 리스크가 따르는 상품인데 은행에 비해 증권사가 더 많은 제약을 받고 있는 것은 말이 안된다"면서 "미국은 우리와 달리 증권사(투자은행) 업무에 대한 제약이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김 부원장은 "미국 투자은행은 월가를 이끌며 기업 자금 파이프라인 역할을 하고 있다"며 "그러나 우리의 경우 시중자금을 대부분 은행이 끌어안고 있어 모험산업으로 자금이 흘러가지 못하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은행 위주의 보수적 금융정책이 불황병을 오히려 심화시키고 있다는 얘기다.


이건호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