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언론에 등장하는 한국 뉴스의 70∼80%는 북한 핵 문제다. 미국 언론들이 오래전 순수 연구차원에서 추진됐던 한국원자력연구소의 우라늄 분리실험이나 플루토늄 추출실험을 핵실험이라도 한 것처럼 떠든 것도 한국 하면 핵 문제를 떠올리는 오랜 관성 때문이다. 그런 미국 언론이 최근 주목해서 다룬 뉴스가 한국 여성의 의식 변화였다. 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인 NPR는 얼마전 한국의 이혼율이 치솟고 출산율이 뚝 떨어지는 등 여성들의 의식에 혁명적인 변화가 일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 여성에 대한 인식이 남편에 순종하고 가정을 우선하는 예전의 이미지에 머물고 있었던지 여성들이 이혼을 주도하고 일하기 위해 애를 낳지 않는다는 사실을 놀라운 변화라고 보도했다. 하긴 한국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이 50%에 육박할 정도로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에 많은 변화가 생긴 것은 사실이다. 여성 두 명중 한 명꼴로 직장을 갖고 있다면 일하는 여성이 유난히 많은 북유럽이나 미국외에 그 어떤 선진국보다 여성의 사회활동이 뒤진다고 볼 수 없다.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것은 출산율이 낮아지는 현상과 맥을 같이 한다. 여성들이 일하면서 돈을 벌기 위해 결혼해도 애를 낳지 않는 것이다. 생산활동에 참여하는 인구를 늘리는 것이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첩경중 하나라면 출산율 저하는 경쟁력을 갉아먹는 심각한 문제다. 많은 여성들이 일을 하고 애도 적정한 수준으로 낳는 두 가지가 충족돼야만 경쟁력이 깎이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부즈 앨런 해밀튼이라는 컨설팅회사는 두 가지 모두를 위해 노력하는 회사다. 이 회사의 본사 1층엔 사무실이 없다. 1층 전체에 보육시설만 들어서 있다. 여성들이 아이들 걱정하지 않고 일할 수 있도록 한 층 전체를 내준 것이다. 미국 방송에서 한국 여성의 출산율이 급락하고 이혼이 급증했다는 뉴스를 듣는 것은 그리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 여성들이 원하는 수준으로 애를 낳고 일도 잘 할 수 있도록 기업의 배려는 물론 사회나 국가의 관심이 높아졌다는 소식을 듣고 싶다. 뉴욕=고광철 특파원 g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