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 문제가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의 '검토중'이라는 발언 이후 다시 화두로 등장했다. 특히 재테크 시장에서 파장이 의외로 크게 미치고 있어 앞으로의 움직임이 주목된다.


리디노미네이션은 화폐의 실질가치를 그대로 두고 액면을 동일한 비율의 낮은 숫자로 표시하는 조치를 말한다. 가령 현재 화폐거래 단위를 1백분의 1로 액면 절하할 경우 9백원짜리 지하철 티켓은 9원이 되고,5억원짜리 집은 5백만원이 된다. 한 나라에서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하는 이유는 △자국통화의 국제적 위상 제고 △인플레 기대심리 억제 △지하자금의 양성화 등 긍정적인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반면 △ATM기 변경 등 막대한 비용 초래 △우수리 절상에 따른 물가상승 △국민들의 불안심리 초래 등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현 시점에서 관련 기관들이 논의를 자제키로 했지만 재테크 시장에서 파장이 계속되고 있는 원인은 바로 이 부작용 때문이다. 이론적으로 돈의 가치가 전혀 바뀌지 않지만 심리적으로는 돈의 가치가 낮아지는 착시현상이 발생한다.


일부 부유층들은 있는 사람의 속성상 리디노미네이션에 따른 화폐교환 과정에서 자신의 숨겨진 재산이 노출되는 것이나 세무조사를 꺼린다. 또 나이 드신 분들은 1953년,1960년 화폐개혁처럼 예금을 동결하거나 숨은 돈이 드러날 경우 세무추적을 당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 경우 한국은행이 리디노미네이션을 추진할 때 예금동결과 세무추적없이 무제한적으로 신·구 화폐를 교환해준다 하더라도 불안심리가 해소되기는 힘들다.


이미 이런 착시현상과 불안심리를 반영해 발빠른 투자자들은 부동산 투자에 나서고 있다. 일부에서는 부동산 투자에서 더 나아가 뉴욕 상품거래소 등에서 골동품,그림 등과 같은 실물투기를 하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안전통화인 미 달러화와 골드바를 사들이는 움직임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리디노미네이션은 시급을 요하는 현안이 아니기 때문에 물가가 안정되고 경기도 괜찮고 정치·사회적으로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여건이 됐을 때에나 추진된다. 또 사전 공론화 과정과 준비과제들이 많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 추진한다 하더라도 3~5년 이후에나 추진이 가능하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리디노미네이션 논의를 의식해 성급하게 부동산과 실물투기를 하는 사람들은 의외로 큰 손해를 볼 가능성도 있다는 점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한상춘 논설·전문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