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저녁 서울의 한 음식점에서는 KBS의 중견간부를 지낸 인물들이 모여 KBS발전협의회 창립총회를 개최했다. 이들은 창립선언문에서 "국민의 보편적 정서와 다양한 견해 및 가치를 담아야할 KBS가 어느 정권 때보다 더욱 철저하게 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하고 말았다"고격정을 토로했다. 20여년 전, 방송이 '땡전 뉴스'를 제작하던 시절 입사한 이들의 눈에는 지금의KBS가 그렇게 비칠 법도 하다. 자신들이 젊었을 때는 책임자들의 아부성 행태와 중간 간부들의 보신적인 자세에 울분과 자괴감을 느껴 한탄도 하고 푸념도 했었는데, 요즘에는 젊은 후배들까지권력 편들기에 앞장서고 있는 게 아닌가. 심지어는 방송의 정권 도구화를 막기 위해 태동한 노동조합마저 정권과 코드를맞춰 20년 남짓 방송에 몸담아온 자신들에게 수구와 반동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홍위병' 노릇을 서슴지 않으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이런 시선을 지닌 사람은 이들에서 그치지 않는다. 한국언론학회의 탄핵방송 분석보고서 연구책임을 맡았던 이민웅 한양대 교수는 6월 말 관훈클럽 토론에서 "TV방송은 왜 세세연년 정권의 성격에 상관없이 정권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이데올로기적 나팔수' 역할을 해올 수밖에 없었는가"라고 공박했다. 한나라당도 새 정부 들어 끊임없이 KBS를 "정권의 나팔수"라고 공격하고 있으며일부 보수신문의 논조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KBS의 보도태도를 '정권 편들기'나 '권력의 주구' 식으로만 바라보면 절반쯤은 설명할 수 있지만 나머지 절반은 이해하기 어렵다. KBS가 탄핵에 반대하고 국가보안법 폐지에 앞장서는 듯한 보도 태도를 보이는것이 정권 편들기라고 하자. 그러면 이라크 파병 관련보도나 아파트 분양가 비공개방침 보도에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이 묻어나오는 것은 어찌된 영문인가. 좀더거슬러 올라가 KBS 노조가 서동구 사장 임명에 반기를 든 것은 무슨 까닭인가. 고개 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극단적인 가정 하나를 들어보자. 지난 대선에서 한나라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면 아마도 친이회창 인물이 사장에 선임됐을 가능성이 크다. 부사장과 본부장등 요직에도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 인사들이 상당수 포진했을 것이다. 그러면 송두율 교수 미화 논란을 불러일으킨 '한국사회를 말한다-귀향, 돌아온망명객들' 편은 KBS 전파를 타지 못했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반대로 송두율 교수를 '빨갱이'로 모는 프로그램이 옛날처럼 방송될 수 있었을까. 시대가 달라지기도 했지만 노조를 비롯한 젊은 제작진의 반발로적지 않은 갈등을 빚었을 것이다. 현재 젊은 기자와 PD를 비롯한 상당수의 KBS 구성원들은 대통령을 편든다거나권력에 굴종한다고 추호도 생각지 않는다. 시대적 요구이자 역사의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어찌 보면 이게 더 무서운지 모른다. '땡전 뉴스'를 만들 때는 역사에 대한 부끄러움도 있었고 이를 비판하는 국민에게 죄송스런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만일 '불의'를 '정의'로 여긴다면 죄책감이 자리잡을 리 없다. 보수 세력에 의해 친노무현 언론으로 분류될 법한 한 인터넷신문의 대표도 공개토론회에서 "KBS가 혹시 맹목적 당파성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우려 섞인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 점을 고려하지 않고 옛날 방식대로-사물의 한쪽 면만을 보고-지금처럼 현재의 KBS를 '권력의 나팔수'나 '정권의 홍위병'이라고 공격한다면 이들을 설득할 수도 없고 태도를 바꿀 수도 없다. 오히려 "아직도 구시대적 패러다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냉소적인 시선을 받거나 "그 시절 '땡전 뉴스'를 만들던 사람들이 적반하장격으로 나선다"는 모멸적인 반응에 부딪힐 뿐이다.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heeyo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