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국회가 벽두부터 "정쟁의 장"으로 변질되고 있다. 여야가 국가보안법과 과거사 규명 처리방향을 놓고 한치 양보도 없는 정면 대결로 치달으면서 당초 약속했던 "상생정치"는 물건너가고 한목소리로 청산을 외쳤던 "상쟁정치"가 부활하고 있다. 자연 민생 경제에 전념하겠다던 여야의 약속은 헛구호에 그칠 가능성이 커졌다. ◆부활한 '힘의 정치'=열린우리당은 국보법과 친일진상규명법안을 야당이 반대하면 단독으로라도 밀어붙이겠다는 입장이다. 국회 과반의석을 앞세워 관련법안들을 회기 내에 반드시 처리하겠다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은 지난 8일 행자위에서 한나라당의 반대속에서 친일진상규명특별법 개정안을 표결로 상정,'힘의 정치'라도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이에 한나라당은 시국강연회와 실력저지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막겠다며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한나라당은 10일 국보법과 친일진상규명법 개정안을 확정,여권과의 정면대결을 선언했다. 대화와 타협을 뒤로한 채 4년 내내 사사건건 힘의 대결로 일관했던 16대 국회의 구태정치를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들 사안에 대해 이미 노무현 대통령이 확실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터라 여야간 절충의 여지가 없는 상태다. 여야는 타협을 사실상 포기한 채 각기 지도부 회견 등을 통해 대국민 선전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기관차가 서로 마주보고 달리는 형국이라 여야간 정면충돌은 시간문제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남은 회기 험로 예고=여야의 극단적인 대결은 민생·경제 법안처리를 포함해 향후 정기국회 일정 전반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당장 민생경제가 뒷전으로 밀리는 상황이다. 기금관리기본법과 공정거래법 개정안 등 경제현안은 정쟁에 가려져 있다. 여야가 국회차원에서 예산까지 배정하며 '일자리창출특위'와 '미래전략특위''규제개혁특위' 구성안을 통과시켰지만 2개월이 넘도록 회의 한번 열리지 않았다. 결산을 위해 소집된 일부 상임위는 국보법 등 정치현안을 둘러싼 공방에 시간을 허비하기 일쑤였다. 이를 우려한 듯 노 대통령이 9일 여당 지도부에 민생·경제법안의 회기내 처리를 당부했지만 한나라당이 "일방처리는 용납하지 않겠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어 법안처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형국이다. 게다가 과거사 규명법과 국회법,언론개혁 법안 등 여야가 각을 세우고 있는 법안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어 회기 내내 여야간 격돌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내달 4일부터 시작되는 국정감사도 또다른 정쟁의 장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내년도 예산안의 회기내 처리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벌써부터 나온다. 이재창·홍영식 기자 lee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