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세제개편 방향은 서민.중산층과 기업의 세금을 깎아줘 침체된 경제전반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것이 골자다. 정부는 그동안 경기를 인위적으로 띄우기 위한 감세는 하지않겠다고 공언했으나재경부 세제실이 만든 세제개편안에 열린우리당이 밀어붙인 소득세율 1%포인트 인하와 24개품목 특소세 폐지가 가세하면서 '경기부양'의 모습을 뚜렷하게 드러냈다. 경제주체들이 필요로 하는 분야의 세 부담을 최대한 낮춰 소비와 투자 의욕을되살리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세제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감세 자체의 경기부양 효과에 회의적 시각이많을뿐더러 재정형편이나 세수여건에 관한 치밀한 계산없이 세금만 자꾸 깎아주는정책이 남발되면서 세수부족 증가와 재정건전성 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있다. ◆ 세율인하에 공제확대.. 서민.중산층 세부담 낮춰 이번 세제개편의 큰 줄기는 서민.중산층의 세부담을 대폭 낮춰 민간소비의 불씨를 살리겠다는 것으로 해마다 등장하는 `단골메뉴'다. 정부 안에는 빠져있지만 가장 핵심적인 대목은 당정이 협의중인 ▲모든 과표구간에 걸친 소득세율 1% 포인트 일률인하 ▲ 이자와 배당에 대한 원천세율 1%포인트인하 ▲ 프로젝션TV 등 24개 품목 특별소비세 과세 폐지를 골격으로 한 대대적 감세안이다. 세율은 속성상 한번 내리면 다시 올리기 어렵다는 점에서 정부는 조심스런 입장이지만 확실한 `약발'을 주문하는 여당의 목소리에 밀려 결국 수용했다. 세율을 건드리지 않은 정부 안으로는 봉급생활자 표준공제를 현행 6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늘린 것이 주목된다. 연간 총급여가 3천만원 미만인 서민.중산층이 주된 타깃으로 수혜대상이 연간 75만명(면세자 포함) 추가된다. 총급여 2천만원 미만은 연간 1만6천원, 3천만원 미만은 5만원의 세금을 덜 내는 효과를 본다. 교육비 소득공제도 넓혀 근로자가 본인이 부담하는 직무훈련 비용이나 학원비등이 소득공제 대상이 되고 내년 퇴직연금제 도입에 따라 연금저축에다 퇴직연금을추가로 불입하면 소득공제가 허용된다. 60세 이상 고령자로 1세대 1주택자가 역모기지론을 활용하면 양도세를 비과세하고 개인택시 운송, 용달차 운송, 이.미용업 등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는 업종에 간이과세를 적용한 것도 눈에 띈다. ◆ 기업 투자의욕 살리기 이번 세제개편안의 특징은 단순히 개인에만 초점을 두지 않고 기업들의 세 부담을 `폭넓게' 완화한 점이다. 민간소비도 문제지만 결국 기업이 투자에 나서지 않는다면 실질적인 경기회복이 어렵다는 판단 하에 가히 백화점식 세제지원책이 열거됐다. 무엇보다도 재계가 그동안 줄기차게 요구해온 대기업 최저한세율을 내년부터 2%포인트(15%→과표 1천억원 이하에 한해 13%) 인하한 것이 눈에 띈다. 내년부터 법인세율이 2%포인트 인하되고 중소기업(12%→10%)과 개인사업자(40%→35%)의 최저한세율을 내린 것과 보조를 맞추는 것이지만 정부가 그동안 세수감소를 이유로 반대해왔던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태도변화다. 모회사와 자회사간 배당소득에 이중과세를 하지 않기로 한 것도 투자와 관련한기업들의 운신의 폭을 넓혔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대목이다. 사회간접자본(SOC)사업 부가가치세 면제, 동북아 경제중심기반 구축 관련 물류기업 세법인세 감면, 에너지절약시설 투자 세액공제 확대, 외국인전용단지 입주 외국인투자기업 법인세 감면, 중소기업 ASP(어플리케이션 임대 서비스) 방식 IT투자세액공제도 포함됐다. ◆ 경기부양 `약발' 있을까 그러나 당정이 마련한 감세안이 과연 기대만큼 `속도'와 `강도'를 갖춘 경기부양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는게 대다수 세제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우선 소득세율 1%포인트 인하안은 우리나라의 경우 세수에서 차지하는 소득세비중이 고작 26%(작년 기준)에 그쳐 감세의 효과가 그리 크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세연구원 전병목 연구위원은 "전체 세수의 48%를 차지하는 미국처럼 충분한부양효과를 보기 어렵다"며 "효과가 나타나기까지는 상당기간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소득계층별로 차등을 두지 않고 일률적으로 내리면 세부담 규모가 큰 고소득층에게만 감세혜택이 돌아가고 면세자가 대다수인 저소득층은 수혜대상에서 제외돼 참여정부가 주창하는 소득재분배의 효과가 퇴색된다는 지적도 있다. 봉급생활자에 대한 표준공제 확대안은 대상이 일반적인 중산층 보다는 주로 2인이하 저소득층 가구가 대부분인데다 그나마 내년말 연말정산 때부터 적용이 가능해소비를 부축하는데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프로젝션TV 등 24개 품목에 대한 특소세 폐지도 구매능력이 크게 떨어진 국내가계의 재정상태를 감안하면 큰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대기업 법인세 최저한세율 인하 등 기업 관련 세제지원은 중장기적으로투자를 활성화하는데 톡톡히 기여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 세수 구멍 뚫리나.. 재정건전성 `빨간불' 세금을 깎아주는 만큼 과연 세수보전책이 마련돼 있느냐는 의문이 커지고 있다. 그렇찮아도 세금이 제대로 걷히지 않는 마당에 이처럼 감세대책이 쏟아질 경우 세수차질이 빚어지면서 재정건전성이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이미 올해 세수부족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경기불황 여파로 전체세수의 60%를 차지하는 세목인 법인세와 부가가치세 세수가 급감하면서 올해 세수부족규모가 2조∼3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당정이 이날 특별소비세 부과대상 32개 품목중 24개 품목의 과세를 폐지키로 한 것도 최소한 몇천억원의 세수부족을 초래할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따라 부족한 세수만큼 정부가 적자국채를 발행하는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올해 실질 통합재정수지 적자는 추경편성으로 당초 3조5천억원(GDP 대비0.4%)의 배를 넘는 7조2천억원(GDP 대비 0.9%)으로 커졌지만 추가 국채발행이 이뤄진다면 적자 폭은 GDP 대비 1%를 넘어설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 큰 문제는 내년이다. 정부.여당은 내년에 5조5천억원의 적자국채 발행을 통한 재정지출 확대로 경기를 부양하겠다고 천명했으나 이번 세제개편으로 약 2조원의세수감소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돼 추가 국채발행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민간경제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내년 적자국채 발행규모가 최소 7조원 정도가돼야할 것"이라며 "적자재정을 감수하더라도 경기를 살리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이해하지만 재정건전성을 지나치게 희생하면서까지 경기부양에 나서는 것은 후유증이 클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앞으로 세(稅)그물이 촘촘하게 짜여질 것"이라며 부동산거래 실거래가과세 등 세입기반 확충방안을 발표했지만 시간이 걸리는데다 당장의 감세에 따른 세수부족을 감당할만한 `알맹이'를 찾기 어렵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또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이라는 원칙을 거듭 강조하며 비과세.감면대상을축소한다는 방향을 제시했지만 구체적인 청사진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전병목 연구위원은 "일부 세원을 늘리는 대책이 포함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넓은 세원'보다는 `낮은 세율'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며 "세수진도비율이 예년보다 3%포인트 가량 낮고 세출수요는 갈수록 늘어나는 마당에 무리하게 감세정책을 추진한다면 재정건전성만 크게 악화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연합뉴스) 노효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