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06년부터 5인 이상 기업에 대해 퇴직연금제를 도입키로 한 것은 현행 퇴직금제가 사용자에게 큰 부담인 반면 근로자에게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는 만큼 근로자에게 보다 나은 노후소득을 보장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게 그 취지다.

현행 퇴직금제는 사업주가 퇴직금을 장부상으로만 적립, 도산때 근로자의 수급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데다 종업원 5명 이상 사업장에서 1년 이상 근속한 경우에만 적용되면서 근로자의 절반 가량이 배제되고 있다.

반면 사측의 입장에서는 근로자 퇴직때 일시금을 지급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어 경영상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그러나 퇴직연금제에 대해 노동계는 퇴직금의 불안정성 등을 들어, 경영계는 기업부담을 오히려 증가시킬 수 있다는 점 등을 이유로 각각 반대입장을 밝혀온 상태여서 향후 입법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퇴직금제에 퇴직연금제 병행 =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안은 각 사업장의 여건과 노사의 선호가 다른 점 등을 감안, 현행 퇴직금제를 존치한 상태에서 퇴직연금제를 도입한다는 게 주요 골자다.

퇴직연금의 형태는 확정급여형(DB형)과 확정기여형(DC형) 등 두 가지를 모두 도입, 선택의 폭을 넓힌다.

따라서 기존 사업장은 현행 퇴직금제와 확정급여형 또는 확정기여형 퇴직연금제 가운데 한가지 이상을 설정해야 하며, 법 시행후 신설 사업장이나 5명 미만 사업장은 퇴직연금제를 시행해야 한다.

현행 퇴직금제를 퇴직연금제로 전환하는 경우에는 근로자 과반수 이상의 동의를얻어 연금규약을 작성해야 한다.

◆확정급여형과 확정기여형 = 확정급여형은 향후 근로자가 받을 연금액이 사전에 확정되며, 사용자의 적립부담은 적립금 운용결과에 따라 변동되는 퇴직연금제다.

이에 따라 임금인상률과 기금운용 수익률 등 연금액 산정 요인이 급변할 경우이 위험을 사업주가 전부 부담해야 한다.
경영이 안정적이고 영속적인 기업과 대기업에 적합하다.

반면 확정기여형은 근로자가 자신의 계좌를 갖고 스스로 적립금을 운용하는 것으로, 사용자의 부담금이 사전에 확정되고, 근로자의 연금급여는 적립금 운용수익에따라 변동된다.

직장을 자주 바꾸더라도 통산(統算)이 편리한 반면 운용결과에 따라 연금액이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경영이 불안정한 기업과 자체 퇴직연금제도를 설계하기 어려운 중소기업, 연봉제를 실시하며 매년 퇴직금 중간정산을 실시하는 기업, 직장이동이 빈번한 근로자에게 유리하다.

연금급여 수급자격은 국민연금 수급연령(2033년부터 65세)과 기업의 정년규정(약56세) 등을 감안, 55세 이상에 가입기간 10년 이상인 퇴직자로 설정하게 된다.

연금급여는 규약이 정하는 바에 따라 5년 이상 분할지급하며, 일시금도 선택할수 있다.

◆퇴직연금제 운영 = 퇴직연금 적립금은 사용자가 금융기관과 위탁계약을 맺어 관리 운용하며, 해당 금융기관은 노사합의로 선정토록 한다.

적립금 관리는 근로자의 수급권 보호를 위해 사용자가 근로자를 수익자로 신탁을 설정하는 신탁계약과, 사용자가 근로자를 피보험자로 계약을 체결하는 보험계약방식으로 제한한다.

적립금 운용은 다양한 금융기관의 참여를 허용해 선택의 기회를 보장하되 재무건전성 등 일정한 요건을 갖춘 기관만 허용, 수익성과 안전성을 도모키로 했다.

사용자와의 계약에 따라 금융기관이 운용하는 확정급여형은 관리자로서의 주의 의무와 자기투자 제한 등을 규정하고, 확정기여형은 투자 위험의 최소화를 위해 원리금 보장상품 제시 의무화와 위험자산 투자한도 등을 각각 설정토록 하되 구체적인기준 등은 대통령령으로 규정키로 했다.

◆시행 시기 = 노동부는 퇴직연금제와 관련, 올 정기국회에 정부안을 제출, 종업원 5명 이상 기업에 대해서는 2006년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5명 미만 사업장 근로자도 퇴직연금제를 확대 적용하되 영세 사업주의 부담이 급격히 증가하지 않도록 유예기간을 설정, 2008년 이후 대통령령이 정하는 시기부터 적용토록 하고 사업주의 부담률도 상당기간에 걸쳐 단계적으로 조정키로 했다.

◆개인퇴직계좌 장치 마련 등 = 근로자가 직장을 옮기더라도 퇴직일시금을 계속 적립, 통산해서 은퇴후 노후소득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개인퇴직계좌(통산장치)도 마련한다.

가입계약 방법과 취급 금융기관, 적립금 운용방법 등은 확정기여형과 같으며, 다만 30명 미만 사업장은 노무관리 능력이 취약한 점을 감안해 근로자 전원이 개인퇴직계좌에 가입한 경우 퇴직연금규약 작성 의무 등을 면제해 준다.

이 밖에 퇴직금제에서 중간정산제가 존치되는 점을 감안, 확정기여형의 경우 일정기간의 실직과 주택구입 등 목돈 수요가 있는 경우에는 중도 인출할 수 있도록 하고, 사용자의 퇴직연금 부담금 미납 등으로 연금제가 중단된 기간에 대해서는 퇴직금제도를 적용, 근로자의 불이익이 없도록 할 계획이다.

◆노동계와 재계 반발로 난항 예상 = 퇴직연금제 관련 법안은 당초 정부가 지난해 9월 마련한 뒤 노동계와 재계의 반발 등으로 인해 입법이 지연됐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입법안도 지난 법률안과 내용에 있어 큰 차이가 없는 점 등을 감안하면 입법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노동계는 퇴직금의 불안정성과 영세 사업장이나 비정규직 노동자 소외, 노동자개인의 투자에 따른 위험성, 노동계의 의견 무시 등을 들어 반대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경영계는 "퇴직연금제 안은 기업부담을 크게 증가시키는 것으로, 기업의 대외경쟁력 약화 요인이 될 것"이라면서 "이를 해소할 수 있도록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의 통합 조정방안을 제시하고 기업의 추가부담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해 왔다.

이와 관련, 노동부는 퇴직금제와 퇴직연금제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5명 미만 사업장도 적용을 확대키로 하는 등 노동계의 요구를 반영했다는 입장이다.

또 경영계의 주장에 대해서는 "기존 사업장은 현행보다 부담수준이 늘지 않으며,적용대상이 단계적으로 확대되는 한편 노무관리 유연화가 쉽다는 장점도 있다"고 밝혔다.

(서울=연합뉴스) 김인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