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는 성실과 부지런함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대표적인 우화다.

더운 여름 개미가 땀 흘리며 일하는 건 언젠가 닥칠 겨울에 굶지 않고 편안하게 지내기 위해서다.

사람 역시 미래에 대한 대비와 안락한 생활이라는 보상이 주어질 때 열심히 일한다.

사람은 또 급한 문제가 생기거나 '당근'이 보장되면 평소보다 훨씬 큰 능력을 발휘한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면 보통 때 못하던 일도 해내고,성과급제 도입이나 주위의 성공 사례에 자극받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거꾸로 일의 수행 능력 및 정도에 상관없이 보상이 같거나 비슷하면 적당히 손을 놓고 게으름을 피우게 마련이다.

그런데 보상 여부에 상관없이 일에 매달리고 실수도 거의 하지 않는 일벌레를 만들 수 있는 약이 개발됐다는 소식이다.

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소 신경정신실험실 배리 리치먼드 박사가 원숭이를 대상으로 뇌 속의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의 양을 줄였더니 동기 부여에 관계없이 꾀를 안부리고 죽어라 일하더라는 것이다.

도파민은 집중력과 운동 기분 보상심리 등에 관여한다고 알려져 있다.

때문에 약물이나 니코틴 중독,도박과 게임 중독 예방을 위해 도파민 농도를 줄이는 방법이 강구돼 왔다.

리치먼드 박사의 이번 연구결과 역시 우울증이나 강박증 치료에 이용 가능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도파민 부족은 근육이 마비되거나 떨리는 파킨슨씨병을 낳는다.

정말 효과가 있다면 일은 안하고 권리 주장만 하는 얌체족들에게 한번 투여해보면 어떨까 싶기도 하지만 그런 족속일수록 빠져나가는 기술은 능란한 법이니 자칫 묵묵히 일하는 사람에게만 사용돼 '모던 타임스'의 채플린처럼 컨베이어 벨트에 매달려 허덕이는 꼴을 낳을지 모른다.

금붕어가 어항에서 견디는 건 기억력이 없어 물속 식물에 경탄한 뒤 금방 잊고 유리벽까지 갔다 돌아와 같은 걸 보고 다른 건줄 아는 덕이라지만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그럴 수 없다.

사람이란 작은 일에 목숨을 걸고, 추억 때문에 허망한데 매달리기도 하는 존재다.

게다가 동기란 '꿈과 유머와 광기 사이에 있는 것'이라고 한다.

부작용 없는 발명은 없다지만 이번 연구 또한 악용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이래 저래 무서운 세상이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