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업계의 새로운 수익원으로 기대를 모았던 일임형 랩 어카운트(종합자산관리)가 시들해지고 있다.

외형적인 시장 규모는 커지고 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신규가입이 정체되고 기존 고객은 일부 이탈하는 등 "외화내빈"의 양상이다.

일부 증권사에선 판매금액이 이미 감소세로 돌아섰는가 하면 주식 위탁매매에 밀려 '찬밥' 취급을 받는 곳도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랩 시장이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주춤해지는 랩 판매

1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일임형 랩 전체 판매 규모는 지난달 23일 현재 4조3천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지난 3월 말(2조5백억원)에 비해 4개월 만에 2조2천5백억원 증가한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건설교통부의 국민주택기금 1조5천억원이 포함돼 있어 이를 빼면 일반 고객 판매분은 7천5백억원 증가한 셈이다.

월평균 판매 증가분이 2천억원을 밑돈다는 얘기다.

작년 10월 첫 선을 보인 이후 올해 3월 말까지 매달 4천억원 정도가 팔렸던 것에 비하면 천양지차다.

특히 업계 1,2위를 다투는 삼성증권과 대우증권의 판매금액은 최근 2개월 사이에 각각 5백억원과 6백억원 가까이 감소했다.

LG투자증권과 현대증권의 판매금액이 4천억∼5천억원대로 늘고 새로 참여한 대신증권 등도 실적을 올리고 있지만 랩 시장 전체적으로는 정체상태에 빠져들었다는 것이 증권사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증시 침체가 치명타

4월 말 이후 주가가 떨어지면서 신규 가입이 뜸해지고 중도해지도 늘고 있다.

A증권사 랩 영업팀장은 "증시 침체로 마이너스 계좌가 속출하면서 고객들의 반응이 냉랭해졌다"고 말했다.

랩 상품의 수익성이 낮아 증권사들이 전력투구하지 않는 측면도 있다.

B증권사 랩팀장은 "위탁매매의 경우 1년에 6∼7번만 주식을 거래하면 1년치 랩 수수료(위탁자산의 2∼3%)만큼을 벌 수 있다"면서 "증권사 입장에선 단기간에 손쉽게 이익을 낼 수 있는 위탁매매를 제쳐두고 당장 돈이 안되는 랩에 주력하기는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털어놨다.

◆허술한 고객 관리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요인은 증권사들의 허술한 고객(계좌) 관리다.

증권사 전문운용인력이 '1 대 1'로 고객의 자산을 관리한다는 당초 취지가 크게 퇴색되면서 고객들의 외면을 자초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삼성 대우 LG 현대 등 4개 대형사의 일임형 랩 계좌 수는 7월 현재 3만8천47개에 달하지만 랩 운용인력은 고작 39명뿐이다.

1인당 평균 9백75개의 계좌를 관리하고 있다는 얘기다.

전문적인 관리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C증권사 랩팀장은 "운용인력 1명이 맡는 계좌 수가 1백개를 넘어가면 '1 대 1 자산관리'는 물리적으로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포괄주문 허용 등 개선책 필요

랩 상품은 특성상 계좌별로 수익률이 천차만별이다.

계좌별로 주식매매 주문이 나가기 때문에 매매 종목이 똑같더라도 주문 및 매매 체결 순서에 따라 수익률이 달라지게 된다.

그러나 고객 입장에서는 이에 대해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증권사들은 운용인력을 계좌 수만큼 늘리기는 어려운 만큼 투신권 펀드처럼 대표계좌에서 한꺼번에 주문을 낼 수 있게 '포괄주문'을 허용해줄 것을 금융감독원에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금감원은 펀드와의 업무경계가 무너진다는 이유로 '불가' 입장을 고수,증권사의 입지를 더욱 위축시키고 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