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산 후판 너 마저...'

일본 철강업계가 한국 업체에 공급하는 선박용 후판가격의 전례없는 대폭 인상을 추진, 국내 조선소들이 `초비상'에 들어갔으며 한.일 업계간 마찰로 번질 조짐도보이고 있다.

국내 업체들의 계속된 가격 인상에 이은 일본산 후판가 상승은 원가부담 증가로 이어질 수 밖에 없는 데다 국내 철강업체들의 추가 인상이라는 `부메랑 효과'를초래할 가능성이 커 조선업체들이 전전긍긍하고 있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일본 철강업체들은 올 4분기 및 내년 1분기 후판 가격 인상을 요구하며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빅3'를 비롯한 조선업체들과 개별 가격 협상을 벌이고 있으며 다음달 안으로 가격조율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조선업체들은 구체적인 협상 내용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으나 일본업체들이 요구하는 인상폭은 현 가격의 33-45%에 달하는 t당 150달러(17만5천여원)-200달러(23만3천여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인상은 상승폭 면에서 사상 최고 수준으로, 일본산 후판 가격은 지난해 1분기만 하더라도 t당 280달러였으나 4분기 340달러, 올 2분기 420달러, 3분기 450달러 등으로 최근 들어 가파른 상승세를 보여왔다.

일본업체의 요구가 받아들여진다면 일본산 후판 가격은 현재의 t당 450달러(올 3분기 기준. 약 52만원)에서 600-650달러(약 70만-75만여원) 수준으로 급등, 동국제강의 후판가격에 육박하거나 오히려 상회하게 된다.

이처럼 일본 철강업체들이 후판 가격을 큰 폭으로 올리겠다고 나선 이유는 무엇보다도 국내 조선업계가 작년에 이어 올해 유례없는 수주 초호황을 누리면서 일감이폭증, 후판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반면 공급은 이를 뒷받침해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나 그에 못지 않게 국내 업체들의 잇따른 인상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현재 포스코와 동국제강이 공급하는 선박용 후판 가격은 각각 t당 55만원, 75만원 수준으로 1년여 새 포스코는 15만원, 동국제강은 33만원이나 뛰어올랐다.

이는 2002년 4월부터 1년 사이 t당 후판가가 2만-4만원 밖에 인상되지 않았던 것과 크게 대비되는 것으로 특히 후판의 원재료인 슬라브를 고로를 통해 자체 조달하는 포스코와 달리 외부에서 들여오는 동국제강은 슬라브가격 변동에 따라 인상폭이 더 컸고 올들어서만 5차례나 가격을 올렸다.

현재 국내 선박용 후판 수요량 가운데 신일본 제철, JFE 스틸 등 일본 철강업체공급분이 차지하는 비중은 30% 가량이며 나머지 물량 중 포스코와 동국제강이 약 6대4 가량의 비율로 공급하고 있다.

조선업계들은 이미 원자재가격 상승분 반영이 어느정도 마무된 만큼 포스코식 방법으로 후판을 생산하는 일본업체들이 외부에서 슬라브를 조달하는 동국제강 수준으로 가격을 올리겠다며 `엄포'를 놓는 데 대해 납득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특히 그동안 국내산 후판의 가격을 밑돌던 일본산 제품의 가격이 큰 폭으로 올라갈 경우 포스코 등 국내업체의 추가 가격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어 조선업계는 당혹감 속에 대응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이와 관련, 각 조선소 구매 담당 임원들은 지난 27일 긴급 회의를 갖고 대책을 논의하기도 했으나 물량이 달리는 상황에서 칼자루를 쥐고 있는 쪽은 일본 철강업체여서 상황을 낙관하기는 힘든 상태다.

국내 조선업계는 일단 추이를 지켜보며 인상폭 최소화를 위해 만전을 기울이되 사태가 악화될 경우 공동대응도 모색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지난 30년간 한국 조선업계와 일본 철강업계가 맺어온 `우호관계'에 이상전선이 생기는 동시에 양국 업계간 마찰 사태로 비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업계 관계자는 "선가가 바닥에 있던 9.11 테러 이후의 수주물량이 올 매출에 본격 반영되는데다 원자재 가격까지 천정부지로 솟구치고 있어 채산성 악화는 불가피하다"며 "포스코 등 국내 업체들이 물량 증대 등 조선업체와의 협력을 모색하고 있지만 당분간은 가격 인상과 물량 부족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서울=연합뉴스) 송수경 기자 hanksong@yonhap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