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국회 개원에 맞춰 열린우리당 의원 명의로 각종 법안이 중구난방식으로 국회에 제출되면서 여권의 정책 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집권여당, 특히 국회의 과반 권력을 쥔 여당 의원들이 제출하는 정책성 법안은 민생을 비롯한 국가 시스템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충분한 사전 검토 등 신중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의 경우 "152개의 개별 정당이 있다"는 정가의 우스갯 소리처럼 의원들의 개성이 강하고 의정활동 경험이 없는 초선들이 많아 지도부 차원의 통제가 사실상 불가능한 실정이다.

이와 관련, 천정배(千正培) 대표를 비롯한 원내 지도부는 안건 발의에 앞서 당정책위 검토를 거치도록 뒤늦게 `주의'를 주고 나섰지만 최근엔 다선 의원들이 법안경쟁에 가세하면서 주워담기에도 급급한 상황이다.

대표적인 법안 남발 사례는 선거법이다. 국회 정치개혁특위도 아직 꾸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선거법과 정치자금법, 정당법 등 정치관계 3법 개정안이 여당의원 명의로 국회에 무더기로 제출되거나 발의를 기다리고 있다.

선거법 개정안만 해도 ▲재보선 투표일을 토요일에서 목요일로 옮기는 법안(조성래) ▲선거권 행사 연령을 20세에서 19세로 낮추는 법안(노웅래) ▲기초단체장 후보에 대한 정당 공천을 폐지하는 법안(정장선) ▲공직선거 후보등록 때 최근 5년간 국민연금.의료보험료 납부 실적을 제출토록 한 법안(박영선) ▲지방의원이 해당 지자체장 출마 때 현직 사퇴를 의무화하는 법안(박병석) 등 발의된 것만 5개다.

여기에 재보선 사전투표제(문학진)와 도농복합선거구제(유인태) 도입 등 야당 및 선관위와의 협의가 필수적이고 정치지형과 직결되는 가히 혁명적인 법안도 개별의원 차원에서 대기중이다.

이들 법안에 대해 국회 정개특위 위원장에 내정된 이강래(李康來) 의원은 19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선거법은 여야간 합의가 기본"이라며 "모두가 개인 의견이며 참고용일 뿐"이라고 말했다.

외교.안보와 민생도 `묻지마.나홀로 발의'의 예외가 아니다.

특히 당의 스펙트럼을 반영하듯 이념적 선명성을 내세워 사회적 시선을 끌 수 있는 개정안이 쏟아지고 있다.

의문사위 조사관의 간첩 경력을 놓고 사회적 논란이 일고 있는 터에 원혜영(元惠榮) 의원은 의문사위가 정보.수사당국 기밀자료를 무한정 열람할 수 있도록 한 개정안을 제출했고,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대법원의 유죄판결이 나온 가운데 임종인(林鍾仁) 의원은 대체복무 관련 입법을 추진중이다.

또 유인태(柳寅泰) 의원은 국민적 반감이 큰 사형제 폐지안을, 김선미(金善美)의원은 간호사에게 제한적으로 진료권을 주는 간호법 제정을 발의할 참이다.

공직자 윤리법도 소급입법 및 재산권 침해 논란 속에서 재산등록시 취득경위와 소득원까지 밝히도록 하는 개정안이 김한길 의원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다.

문제는 이들 법안이 일부 언론의 `과대 포장'과 맞물려 마치 내부 조율을 거친 `공론'인 것처럼 외부에 전달되고 있다는 데 있다.

천 원내대표는 이날 상임중앙위원회의에서 "개별의원들의 입법활동이 최근 당론인 것처럼 보도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고, 원내 핵심 관계자는 "과반이 됐다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의원이나 언론이나 같은 것 같다"고 꼬집었다.

그러나 법안 남발 현상은 단지 언론 탓으로 돌리기에는 사안이 중대하다는 데 이견이 없어 보인다.

천 대표 또한 "개별의원이 추진하는 입법활동은 분과위와 소위, 최종적으로 의총을 통해 당론으로 추진하는 것과는 구별돼야한다"며 모든 분과위에 대해 법안심사위를 구성하도록 했다.

법사위 소속의 한 의원은 "당에 워낙 튀기를 좋아하는 의원들이 많아 법안 제출까지는 막지 못하더라도 사후 검토는 하기로 했다"며 "처음에 했던 입단속이 법단속으로 가는 것"이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재현기자 jah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