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 부총리, 전윤철 감사원장, 이근영 전 금융감독위원장, 강봉균 열린우리당 의원 등 고위 공직자들이 공직 퇴임 이후 국민은행으로부터 월 5백만원씩 자문료를 받아왔던 사실이 미묘한 시점에 공개돼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 부총리 등 당사자들에 대한 도덕성 시비도 그렇지만 전직 장관들의 자문료 수수가 뒤늦게 공개된 배경에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 사안 개요

18일 금융감독원과 국민은행에 따르면 국민은행 연구소는 지난 2002년 4월강봉균 당시 한국개발연구원장을 시작으로 이헌재 부총리 등 4명의 전ㆍ현직 장관들에게 자문료를 지급해 온 것으로 확인됐다.

이 부총리는 2002년 11월부터 올 2월 부총리로 임용되기 직전까지 8천만원을 지급받았고 이 전 금감위원장은 올 3월부터 지금까지 2천5백만원을 받았다.

전 감사원장은 부총리를 그만둔 직후인 2003년 7~9월 사이 1천5백만원을 국민은행으로부터 받았다.

이 사안에 정통한 관계자는 또 "강봉균 당시 한국개발연구원장도 2002년 4월부터 7월까지 유보수 자문역을 맡은 적이 있다"고 밝혔다.

이같은 사실은 금감원이 올 4,5월 국민은행을 상대로 실시한 정기 종합검사에서 밝혀졌으며 청와대 사정라인에도 보고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이 부총리는 "공직생활을 그만둔 지 2년 정도 지났고 세금도 제대로 낸 만큼 떳떳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전 금감위원장 역시 "국민은행측이 연구소 고문을 맡아 경제와 금융에 대한 자문을 해달라고 제안해와 수락했다"고 해명했다.

신기섭 국민은행 부행장은 "미국도 키신저나 루빈 등 전직 고위 관료들이 퇴직 후 민간기업의 고문을 맡은 사례가 상당하다"며 "통찰력과 식견을 갖춘 명망가를 정식으로 고문으로 위촉하고 자문료를 지급한 것은 정상적인 기업활동의 하나"라고 주장했다.

◆ 도덕성 시비

이와는 달리 금융계 일각에선 '할 일이 많지 않은 연구소 고문의 자문료로 5백만원을 지급해 온 것은 전직 장관에 대한 품위 유지비 지급'이라는 견해가 대두되고 있다.

또 이들이 향후 고위 공직자로 재기용되거나 국회의원 등으로 선출될 때를 대비한 보험금 성격이란 시각도 있다.

금융계에선 사정이야 어찌됐건 이 부총리, 전 감사원장 등 현직 고위 공직자들이 도덕성에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나라당은 이날 논평을 통해 "부총리와 감사원장이 납득가지 않는 이유로 거액을 받은 것에 대해 국회 차원의 진상규명이 필요하다"며 국회조사를 촉구했다.

◆ 배경 둘러싼 논란

한편 자문료 문제가 뒤늦게 언론에 공개된 배경을 놓고 다양한 관측도 나오고 있다.

우선 대규모 분식회계설로 금감원의 조사를 받고 있는 국민은행측이 터트린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대두되고 있다.

이에 대해 국민은행측은 "절대 아니다"고 펄쩍 뛰고 있다.

최근 이 부총리로부터 연이어 정면 공격을 받고 있는 노무현 정부의 386세대 측근들이 '반격'에 나선 것이라는 진단도 그럴 듯하다.

무능하다는 공격에 도덕성 시비로 맞불을 놓은 것이라는 주장이지만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최근 감사원으로부터 '카드 특감'과 관련해 집중포화를 맞은 금감원이 전 감사원장에 대한 '반발' 차원에서 제기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미 수개월 전에 밝혀진 일이고 관련자료를 금감원이 갖고 있다는 점에서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분석이지만 이 경우 '표적'이라 할 수 있는 전 감사원장은 다른 대상자에 비해 금액이 가장 적다.

어떻든 과천 관가에선 전직 고위관료의 과외활동에 대한 별도 규정을 만드는 등 제도개선 필요성도 제기하고 있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