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의 개혁입법 추진계획이 출발부터 순탄치 않다.

우리당은 지난 8일 의원총회에서 4단계 반부패 추진계획을 채택하면서 18개의관련 법안의 제.개정을 이번 임시국회 때부터 추진하기로 했으나 법리 논쟁과 이해당사자들의 반발로 인해 내부 논란을 거듭하고 있다.

총선 공약이자 소속 의원 전원의 서명을 받아 17대 국회 첫 법안으로 발의하기로 했던 `불법정치자금 국고환수특별법'부터 소급입법 및 재산권 침해 여부를 둘러싼 이견 노출로 발이 묶인 상태다.

법안을 성안한 이은영(李銀榮) 의원은 14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훔치고 빼앗은 돈은 법이 보호해야 할 기득권이나 재산권이 아니다"며 불법자금 환수를 위한 소급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지만, 최재천(崔載千) 의원은 "다른 법률에 몰수.추징 관련 규정이 있고 재산권은 소급돼 침해받지 못하도록 돼 있다"며 위헌 소지를거론했다.

이에 대해 이종걸(李鍾杰) 원내수석부대표는 "형벌불소급의 원칙에 걸리는 게 문제"라며 15일 종료되는 임시국회에서 법안 발의가 어렵다는 입장을 보였다.

역시 총선 공약인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고비처) 설치법도 진통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이은영 의원은 "고비처를 만들기 위해 국회에 들어왔다"며 올 정기국회 때 입법에 의욕에 보였지만, 이종걸 수석부대표는 기소권 부여 등 법안을 둘러싼 쟁점에 대해 검찰과 협의를 거쳐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김대중(金大中) 정부 때 국가인권위법 제정에 실무자로 참여했던 이 부대는 "인권위법도 인권단체의 비난을 무릅쓰고 당과 법무부간의 쟁점을 절반씩 취하고 버리는 것으로 통과됐다"며 "고비처법은 그 정도로 어려운 상황은 아니지만 논의한다는 것은 나쁜 게 아니다"고 말했다.

신기남(辛基南) 의장이 시급성을 강조했던 언론개혁 관련 입법 또한 내부 조율이 선결과제로 대두돼 있다.

우리당은 지난 5월 의장 직속의 새정치실천위원회에 언론개혁단을 별도로 두고시민단체의 의견을 수렴한 보고서를 채택했으나 최근 언론발전 태스크포스가 구성된것 외에 실질적 입법 논의가 부진한 상태다.

한 초선 의원은 "중진들을 중심으로 언론개혁에 대한 신중론이 확산되고 있어 말을 꺼내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밖에 표결 실명제를 도입한 국회법 개정안과 공직자 백지신탁제 등 우리당이추진중인 국회개혁 관련 법안도 국회개혁특위 등 해당 상임위가 여야 대립으로 제기능을 하지 못하면서 정기국회에서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우리당이 내부 조율을 거쳐 개혁 법안을 제출한다고 해도 정치 상황에 비춰볼 때 취지대로 통과될 가능성은 낮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고비처법의 기소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검사파견제를 검토하고, 공공주택 분양원가 문제가 연동제와 절충하는 것으로 가닥이 잡힌 것이 `반쪽 개혁' 논란을 면할 수 없는 대표적인 경우다.

물론 우리당으로서는 신행정수도 건설 문제가 주요 이슈로 부상함에 따라 개혁과제 추진을 전략적 차원에서 미루거나 후순위로 두는 측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총선 이후 석달을 끌어온 분양원가 공개 논란이 말해주듯 당내에서조차 특정 사안을 둘러싼 이견의 폭이 넓다는 점에서 지도부 차원의 강력한 조정력 행사가 없는 한 개혁드라이브가 추동력을 얻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서울=연합뉴스) 김재현기자 jah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