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는 어느 나라나 국책 산업이다.

때로는 권력까지 얽혀든다.

어코드가 광저우를 대변한다면 폭스바겐은 상하이의 금력(金力)을 웅변한다.

기선을 빼앗긴 베이징시는 장고 끝에 현대자동차를 파트너로 선택했다.

도시는 이렇게 승리를 다툰다.

중국 정부의 긴축조치 이후 자동차시장 판도도 급변하고 있다.

상하이 진출 19년의 폭스바겐은 이제 힘이 부친다.

다른 자동차회사들도 4월부터 3개월째 모두 '슬로 템포'다.

자동차 할부금융은 여전히 긴축 리스트에 올라 있다.

그래서 시장을 유지하기만 해도 이긴다.

6월에는 혼다가 월간 판매대수 1위로 올라섰다.

'이란터'라는 중국이름을 달고있는 엘란트라가 차종별로는 2위로 올랐다.

오늘의 주제는 그러나 자동차 산업이 아니다.

베이징현대자동차의 근로자들이 더욱 궁금하다.

기자가 이곳을 방문한 6월22일은 울산 현대자동차 노조가 파업을 결행한다는 뉴스가 알려진 시점이다.

베이징현대자동차 경영지원부장을 맡고 있는 중국인 장량씨는 48세다.

나이보다 늙어보인다.

인사 총무 법무 교육 안전 환경을 맡고 있다.

그는 기자와 만나자마자 "앞으로 5년이면 현대차가 1위가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풍채가 좋다.

6년간의 공무원 생활을 포함해 31년 동안 기술계통에서 일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경영지원부장을 맡기 전의 직책은 노조 부위원장.

"현대자동차는 전통적으로 노조가 세다. 베이징현대차는 어떤가" 하고 질문을 던졌다.

"파업은 안하느냐"는 다소 짓궂은 질문도 슬쩍 곁들였다.

"파업? 파업은 금지되어 있다."

"파업이 금지라니….중국엔 노동3권도 없나?"

"공회(工會:중국에서는 노조를 공회라고 부른다)가 파업하려면 위원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위원회는 또 뭔가?"

"당 위원회도 모르시나."

공회는 공산당의 하부조직이었다.

장량 부장은 "우리는 지금 건설할 때가 아닌가" 하며 빤히 기자를 쳐다봤다.

베이징현대자동차의 공산당원은 정규당원이 5백명, 공청(共靑)이 8백명, 도합 1천3백명이다.

2천7백명 근로자에서 1천3백명이면 중국 공산당원(7천만명)과 전체 인구(13억명) 비례로 따져도 매우 높은 비율이다.

그만큼 힘을 동원해서라도 입사하기를 원하는 좋은 직장이라는 말도 될 것이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의 많은 기업가들은 국내 대기업 노조에 대해 "귀족은 무슨 귀족, 왕족이지"라고 말했다.

중국에서 가장 좋은 점은 노조에 시달리지 않고 경영에 전념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기업가들도 의외로 많았다.

'한태윤태'(한국타이어의 중국식 이름)의 한영길 사장도 그랬다.

그는 "임금이 싼 것만이 아니다. 노동 유연성이 중국 만한 곳은 없다"고 말한다.

한국타이어 중국법인이 '한태윤태'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회사 이름에 국명을 붙일 수 없게 돼 있어서다.

한국타이어는 작년에 미쉐린을 제치고 중국 내 타이어 생산 1위를 기록했다.

이 잘 나가는 회사의 근로자는 전부 계약직이다.

중국 동서남북에 걸쳐 4개의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삼성SDI에는 아예 공회조차 없다.

한국에서처럼 노사협의회를 운영하고 있을 뿐이다.

베이징 차오양구(區)의 전자회사 징둥팡을 방문했다.

하이닉스 자회사인 하이디스를 인수하면서 하루아침에 첨단 LCD기술을 확보해 유명해진 회사다.

중국에서는 '징둥팡의 방법'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한국 채권단으로부터 융자도 받고 기술도 장악한, 말하자면 꿩도 먹고 알도 먹은 성공사례를 뜻하는 말이 됐다.

이곳 근로자들의 손동작이 장난이 아니다.

모두가 뛰어다니며 일한다.

작업장에는 한국 자회사에서 실려온 LCD부품이 가득가득 쌓여 있다.

"열심히들 하시는군요"라고 말을 붙였다.

"생산대수에 연동해 임금을 받으니까요"라고 구매관리부 차장인 초우씨는 말했다.

베이징은 무거운 도시다.

거대한 장안대로에 서면 숨이 턱 막힌다.

권력의 무게가 느껴진다.

중국 여행객의 가슴은 갈수록 무거워져 드디어 절망에 가까워지고 있다.

정규재 부국장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