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회복세가 지나치게 굼뜨다.

거시경제 지표들은 온통 '잿빛'이고 체감경기를 나타내는 소비자 전망지수(CSI)나 기업경기 실사지수(BSI)도 하나같이 내리막이다.

이로 인해 올 2ㆍ4분기(4~6월)부터 경기 회복 조짐이 나타날 것이라던 당초 기대는 이미 물거품이 됐다.

'더블딥(double dipㆍ반짝 회복 후 재침체)'이나 '일본식 장기 불황'에 대한 우려도 심심찮게 흘러 나온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에는 물가마저도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성장률은 낮은데 물가만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나타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 힘을 잃어가는 지표들

지난달 통계청이 발표한 '5월 산업활동 동향'은 내수 뒷받침이 없는 수출 호조세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줬다.

5월중 '산업생산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13.5% 늘어나며 지난해 6월 이후 12개월째 증가세를 이어갔다.

정보기술(IT) 업종 중심의 수출 호황이 지속된 덕분이다.

그러나 내수경기를 나타내는 지표들은 되레 악화됐다.

수출의 지속적인 증가에 힘입어 언젠가는 내수도 살아날 것이라는 전망은 이제 '희망사항'에 그치는 분위기다.

대표적 내수 잣대인 '도ㆍ소매판매액 지수'는 전년 동기 대비 2.2% 하락하며 지난 1월(-2.5%) 이후 4개월 만에 내림세로 반전됐다.

5월 서비스업 활동지수도 4개월 만에 하락세로 뒷걸음질쳤다.

최근에는 소비심리를 외롭게 떠받치던 건설경기마저 급랭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5월중 '국내 건설수주액'은 지난해 3월 이후 14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줄었다.

이 와중에 물가는 연중 최고 수준으로 뛰고 있다.

◆ 줄줄이 내려가는 하반기 성장 전망

민간 연구소들은 올해 경제성장률이 상반기에는 5%대 초반에 머물다가 하반기에는 5%대 중반의 오름세를 탈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소비와 투자 침체의 골이 갈수록 깊어지면서 최근 들어 잇달아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하반기 경제성장률을 당초 5%대에서 4%대 후반으로 낮춰 잡았다.

LG경제연구원도 내수 회복 시기가 생각보다 늦춰짐에 따라 지난 4월 말 발표한 하반기 성장률(5.6%)을 하향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국내 증권사들도 발빠르게 하향 조정 행렬에 동참하고 있다.

SK증권은 당초 5.2%였던 하반기 성장률 전망치를 이달 초 4.6%로 떨어뜨렸고 현대증권과 대우증권도 당초 전망치(5.4%와 5.7%)를 각각 0.2%포인트와 0.7%포인트 내렸다.

기업들이 느끼는 성장률 수준은 이보다도 훨씬 더 낮다.

상당수 기업들이 올 성장률을 3%대로 예상하고 있다는 분석(대한상공회의소)까지 나오고 있다.

◆ 정부의 응급처방, 효과 있을까

하반기 경기에 대한 정부의 전망도 갈수록 어두워지고 있다.

지난 3월만 해도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들이 효과를 내면 6%대 성장도 가능하다"고 자신했던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도 최근에는 "하반기 성장률이 상반기보다 조금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이달 들어 임대아파트 공급, 지방 투기지역 일부 해제 등을 골자로 한 건설경기 연착륙 대책과 4조5천억원 규모의 재정지출 확대 방안이 잇달아 나온 것도 정부의 이 같은 상황 인식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정부의 이런 '응급처방'이 침체된 경기를 살리는데 얼마나 도움이 될지 아직은 미지수다.

재정지출 확대 방안을 발표하면서 굳이 '민생안정'이 목표라고 언급한 점 등에 비춰볼 때 정부의 경기 인식이 아직 안이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도 있다.

물론 비관론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국내 경제가 미국의 금리 인상과 중국의 긴축정책, 유가 상승이라는 3대 악재에 대해 서서히 내성을 길러가고 있는 것은 긍정적인 대목이다.

민간 연구소 관계자는 "수출은 정부가 맘대로 할 수 없지만 내수를 회복시키는 데는 도움을 줄 수 있다"며 "향후 정책 초점이 좀 더 내수 활성화에 집중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