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6년 총선 때 안기부 예산 1천1백97억원을 전용해 신한국당 선거자금으로 썼다는 이른바 '안풍(安風)' 사건과 관련, 법원이 항소심에서 원심을 깨고 강삼재 전 의원과 김기섭 전 안기부 운영차장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서울고등법원 형사7부(노영보 부장판사)는 5일 '안풍' 사건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강 전 의원과 김 전 차장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다만 강씨가 안풍 자금 돈세탁 대가로 금융기관 직원에게 2억원을 지급한 부분중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3천3백만원을 뺀 1억6천7백만원만 유죄로 인정해 강씨에게 벌금 1천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증거상 당시 신한국당 사무총장이었던 강 피고인이 청와대에서 수시로 김영삼 전 대통령을 독대했으며 96년 1월 4백억원이 안기부 관리계좌에서 인출돼 강 피고인이 관리하던 계좌에 입금됐는데 그 사이 강 피고인이 청와대를 방문한 사실도 인정된다"며 "안기부가 아니라 김 전 대통령으로부터 자금을 받았다는 강 피고인의 주장은 상당한 신빙성이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유독 93년에 안기부 잔고가 1천2백93억원가량 증가했는데 이는 이자로 보기는 어렵고 따라서 다른 자금이 유입된 적이 없다는 전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며 "이같은 사실은 김 전 대통령이 9백40억원을 강 피고인에게 직접 전달했다고 보이는 사정과도 자연스럽게 일치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안풍' 자금이 안기부 돈이라는 김 전 차장의 주장에 대해서는 "김 피고인이 항소심에 이르러 강 전 의원에게 직접 9백40억원을 전달했다고 진술한 것은 자신이 궁극적으로 보호해야 할 김 전 대통령의 연루 사실이 밝혀질 수도 있는 우려 때문으로 보인다"고 일축했다.

이에 앞서 1심 재판부는 두 사람의 국고 횡령 혐의를 모두 인정, 강씨에 대해선 징역 4년에 7백31억원의 추징금을, 김씨에 대해서는 징역 5년에 자격정지 2년과 추징금 1백25억원을 각각 선고했었다.

이번 판결은 '안풍' 자금이 사실상 김영삼 전 대통령으로부터 나왔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어서 앞으로 정치적 논란을 불러 일으킬 전망이다.

한편 검찰은 이번 판결에 대해 승복할 수 없으며 대법원에 상고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은 또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소환 여부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향후 '안풍' 자금의 출처 및 성격과 함께 YS의 개입 여부가 검찰 조사의 최대 쟁점으로 부상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안풍' 자금이 YS 대선자금으로 드러난다 할지라도 정치자금 공소시효가 3년인 점을 감안할 때 수사가 제대로 진행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강동균 기자 kd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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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풍사건 일지 >

▶2001 1.3:'안기부, 신한국당에 선거자금 제공' 언론에 보도
▶1.22:검찰, 김기섭 강삼재씨 기소
▶2.20:안풍사건 첫 공판
▶2003 9.23:김씨, 강씨 1심서 각각 징역 5년, 4년 선고
▶2004 2.6:강씨 "안풍자금은 YS돈"이라고 법정진술
▶2.23:김씨 "강씨에게 안풍자금 직접 줬다"고 법정진술
▶5.3:검찰, 안풍자금 국고환수 위해 한나라당사 가압류 신청
▶7.5:김씨, 강씨 2심서 모두 무죄 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