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의 정치참여를 제한하는 문제를 놓고 격론을 벌이던 대학총장들이 자신들의 '밥그릇'이 걸리자 순식간에 '없던 일'로 한 희극이 연출됐다. 2일 제주도에서 열린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의 총장 세미나에서다.

전국 1백60여개 대학 총장은 이날 정부에 건의할 결의문 채택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문제가 된 문구는 '교수의 정치참여 보장제도 재검토'.결의문 초안에는 "교수의 과도한 정치 참여가 학문 분위기를 흐린다"며 "대학 교원이 재직중 국회의원 당선이나 고위공무원으로 임용되면 휴직할 수 있도록 규정한 교육공무원법 제44조 2,3항은 재검토돼야 한다"고 나와 있었다.

박영식 대교협 회장(광운대 총장)은 "교수가 국회의원이 되면 자동 휴직돼 그 공백을 4년간 시간강사로 메워야하는 등 후유증이 크다"며 이를 제안했고 상당수 총장들도 이를 환영했다.

그러나 김현태 창원대 총장의 말 한마디 때문에 분위기는 일순 싸늘해졌다.

"국립대 총장도 고위공무원인 만큼 이 법이 개정되면 우리도 총장 임기가 끝나면 재임용되지 못한다."

이에 당황한 박 회장은 "국회의원 당선시 자동 휴직할 수 있도록 한 교육공무원법 제44조 2항만 재검토하도록 하자"고 수정제의했으나 결국 이 내용은 결의문에서 아예 삭제됐다.

뒤늦게 교육공무원법 제24조 4항에 '대학의 장으로 임용된 자는 임기가 만료되면 재임용된다'는 조항이 있어 교수의 정치 참여를 제한해도 국립대 총장은 안전하다는 게 밝혀졌지만 한번 놀란 총장들은 요지부동이었다.

지난 4·15총선만 해도 총 1백3명의 교수가 출마했다. 학생들은 강의를 팽개친 '정치 교수'때문에 수업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대학들은 급히 대체 강사를 구하느라 이리저리 뛰었다.

학문 분위기를 되찾자는 순수한 뜻보다는 밥그릇에 더 신경을 쓴 총장들이 연출한 해프닝이었다.

제주=김현석 사회부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