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정지아씨(39)가 첫 작품집 '행복'(창비)을 내놨다. '2003년 가장 좋은 소설'로 선정됐던 표제작 '행복'과 신춘문예 당선작인 '고욤나무' 등 8편의 단편이 실렸다. 작가는 무거운 주제의식과 섬세한 감수성으로 개인 속에 각인된 역사의 모순을 탐구하며 정교하게 이야기를 엮어나간다. '행복'은 빨치산 출신 부모 밑에서 성장한 한 여성의 교직생활 경험과 가족 이야기를 담은 자전적 성격의 작품이다. 사립학교 교사인 '나'는 난생 처음 부모 남편과 함께 여행을 떠난다. 목적지는 어머니의 어릴 적 고향인 운포.그러나 부모와 단란한 추억을 나눠본 적이 없는 '나'에게 여행은 서먹서먹하고 낯설기만 하다. 당혹감의 끝에서 '나'는 역사와 그 품안에서 허덕였던 개인의 삶에 대한 소박한 긍정에 이른다. '미스터 존'은 영국에서 자신을 고립시킨 뒤 익명으로 남고 싶어하는 '나'의 이야기다. 그 속에는 한때 품었던 변혁에의 열정을 잃고 정보기관에 자수해 반성문을 쓰고 나온 자신에 대한 자괴감이 숨어 있다. '그리스 광장'의 주인공은 주부다. 어느날 '나'는 옛 애인의 전화를 받고 약속 장소로 향하지만 마치 미로에 빠진 듯 헤매다 발길을 돌려 집으로 오고 만다. 지겹게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려던 마음은 사람들이 가득한 시청앞 지하도에서 어이없이 수그러들고 만다. 그러나 작품 말미에 일상의 미로를 벗어나 제대로 생을 대면하고 싶다는 주인공의 욕망은 더욱 강렬하게 되살아난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