柳東吉 < 숭실대 명예교수.경제학 > 만성병을 앓는 경우 급성보다 그 원인을 찾기는 어렵고 치료방법도 어렵다. 원인이 한 두 가지가 아니라 복합적이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이 이런 경우다. 중소기업 지원 정부기관의 조직개편이 다각적으로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자원부와 중소기업특별위원회,중소기업청으로 구성돼 있는 현 지원체계로는 중소기업을 효과적으로 지원하기 어렵다고 보는 것 같다. 지방중기청의 지자체 이관도 검토한다고 한다. 조직을 바꾼다고 모든 문제가 풀리는 건 아니다. 하지만 조직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중소기업을 어렵게 하는 하나의 요인이라는 걸 부인할 수 없다. 중기청은 1996년 2월 김영삼 정부가 그해 4월 총선을 앞두고 중소기업부 신설 등 중소기업 지원을 강조하던 당시 김대중 총재의 야당을 의식해 급히 만든 조직이었다. 중기청에 대한 기대는 컸지만 중소기업의 현장목소리를 대변하고 중소기업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할 수 있는 조직이 아니었다. 권한은 없고 책임만 지는 기관이라고 해서 '중소기업문제 검토청'이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다. 98년 2월에는 정부조직개편에 따라 통상산업부 소관이었던 중기정책수립기능이 중기청으로 이관됐고,중기지원제도의 유사·중복을 방지하고 합리적인 중기지원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대통령직속 중기특별위원회가 설치됐다. 2백95만여개에 이르는 중소기업은 다양한 산업에 걸쳐 있다. 업종과 규모,업력·기업형태·판매구조 등이 달라 정책수요가 당연히 다르다. 중소기업 지원은 정책을 수립하는 중기청 이외에 산자부 정통부 과기부 농림부 문광부 등을 포함하는 여러 정부부처로 다원화돼 있다. 중소기업 지원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관련부처와의 업무협조와 조정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산자부 외청인 중기청은 차관급 청장으로 관련부처간 협조와 조정을 이끌어내는 데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 그래서 중소기업특별위원회(비상설기구)가 설치됐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았다. 중기특위는 범(凡)부처적 성격의 기관으로 중기청의 직접적 상위기관은 아니지만 예산은 중기청산하로 돼 있다. 특위 위원장은 장관급이라고 하지만 비상임이며 파견직원으로 구성된 사무국 조직으로 운영된다. 이러한 기형적 조직이 그 기능을 수행할 수 없는 건 당연하다. 이래서 중기지원체계의 개편 필요성은 일찍부터 제기돼왔던 것이다. 조직을 개편하려면 우선 각 부처에 흩어져 있는 중기지원정책을 통합하고 조정할 수 있도록 다단계의 지원조직을 단일 행정기관으로 통합해야 한다. 중소기업정책의 독자성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방중기청을 지자체로 이관해야 한다는 주장은 어떤가. 각 지방중기청과 지자체간 중소기업 지원기능이 부분적으로 중복되고 있다는 걸 이유로 내세운다. 중기지원은 조장행정이므로 그 특성상 어느 정도의 중복은 불가피하지만 이러한 중복은 수요자인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유리한 측면도 있다. 중복을 피하려고 이관을 하면 어떻게 되는가. 지자체간 재정자립도의 차이,지자체의 순환보직·역량미숙 등으로 지방중기행정이 가지고 있는 전문성과 일관성이 상실되거나,지역간 지원제도의 불균형이 발생할 가능성만 커질 것이다. 지방중기청이 가지고 있는 전문성과 일관성을 왜 사장시키려는지 알기 어렵다. 지방중기청은 각종 중소기업 지원시책을 집행함과 동시에 해당 지역중소기업이 어려움을 토로하고 해결책을 논의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라는 점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이관구상이 알려지자 지방 중소기업체들이 반발한 것은 이를 설명하고 있다. 문제가 있다면 지방중기청의 기능을 보완하는 게 옳다. 지원정책을 발표하고 조직을 개편한다고 해서 중소기업이 활기를 띠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정책을 짜겠다고 다짐하는 정부라면 지원조직은 제대로 정비해야 한다. 제대로 작동 안 되는 조직으로 문제를 풀려는 건 미사일시대에 돌팔매질로 싸우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yoodk9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