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쿼터의 존폐를 둘러싼 최근 논쟁을 보면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찬성론자와 반대론자 모두 스크린쿼터가 한국영화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데 동의하면서도,한국영화의 높은 시장점유율을 스크린쿼터 유지 혹은 폐지의 논거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스크린쿼터가 영화산업 발전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측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영화의 흥행에 영향을 주는 변수가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감독,배우,시나리오,장르,광고,배급력,개봉관 수,개봉시기,거시경제 상황 등이 흥행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러한 많은 변수들의 영향을 제거하고 순수한 스크린쿼터의 효과를 계량화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이러한 측면에서 스크린쿼터문화연대의 "스크린쿼터가 하루 축소되면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은 약 0.6% 감소한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 주장대로라면 현재 1백46일로 돼 있는 스크린쿼터가 58일로 축소될 경우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은 0%가 된다. 계량화가 어렵다는 것이 스크린쿼터의 무용성(無用性)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엄밀한 연구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 아래에서 막연히 스크린쿼터가 영화산업 발전에 기여했다고 인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더구나 연구보고서의 형식을 빌려 스크린쿼터가 축소되면 국내 영화산업이 몰락할 것처럼 과장하는 것은 정치적 수사(修辭)로서는 가능할지 몰라도,실증주의와 객관성을 생명으로 하는 연구자의 태도는 아니다.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스크린쿼터를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이 제도를 통해 '문화적 다양성'을 확보하라는 뜻이다. 영화산업을 발전시키는 산업정책적 수단으로 사용하라는 취지가 아니다. 따라서 스크린쿼터의 존폐는 이 제도가 우리 영화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데 효과적인지 아닌지를 바탕으로 결정되어야지,한국영화의 흥행 성공에 얼마나 기여했는지가 잣대가 돼서는 안된다. 최근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이 50%를 상회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 영화가 산업적 측면에서 발전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시장점유율이 영화의 다양성을 나타내는 지표는 아니다. 예를 들어 연간 관람객 수가 1억명이고 한국영화를 관람한 인원이 5천만명일 경우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은 50%가 된다. 시장점유율 50%는 '실미도'나 '태극기 휘날리며'와 같은 흥행작 다섯편만으로도 달성될 수 있다. 시장점유율은 한국영화의 흥행성을 나타내는 지표이지만,다양성에 대해서는 우리에게 아무런 정보를 제공하지 못한다. 우리 영화의 다양성은 어떤 경우에 확보되는가. 거칠게 표현하면 '다수의 한국영화가 적절하게 관객을 동원하면서 상당 기간 상영될 때' 다양성이 확보될 것이다. 여기서 다수의 영화는 연간 몇 편이고,적절한 관객 수는 하루 평균 몇 명이며,상당 기간은 몇 주(週)를 의미하는지가 문제가 된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두세 편의 영화가 수천만명을 동원하면서도 연간 수십편의 영화가 1주일 내에 종영(終映)되는 상황을 다양성이 확보된 것으로 간주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스크린쿼터는 극장주에게 연간 1백46일 이상 한국영화를 상영할 것을 강제하지만 연간 몇 편의 한국영화를 상영할 것인가는 극장주의 자유의사에 맡기는 제도다. 이 제도 아래에서 극장주들은 흥행작 몇 편만으로 쿼터를 채우는 전략과 수많은 영화를 초단기간 상영하는 방식을 병행할 것이다. '다수'의 영화를 '상당 기간' 상영하는 선량(善良)한 극장주는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스크린쿼터의 치명적인 약점이 여기에 있다. 스크린쿼터가 한국영화의 흥행 성공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는 불분명하다. 또한 국내 영화산업의 발전이 이 제도의 본래 목적은 아니다. 스크린쿼터의 축소 혹은 폐지는 '영화의 다양성 확보'라는 잣대를 통해 결정돼야 한다. 스크린쿼터는 문화정책이지 산업정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firstsu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