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희 <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 회장 mhjung@krict.re.kr > 자동차 운전을 하면서 가장 직접적인 도움을 기대하는 것은 길 안내판일 것이다. 그러나 누구라도 한 번쯤은 화살표가 지시하는 대로 열심히 따라가다 보면 전혀 엉뚱한 곳에 도착하고 말거나,아니면 같은 곳에서 계속 맴도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이는 낯선 길을 가야 할 때면 더욱 심각하게 느껴져서,그럴 때면 길 표지판이라는 것이 이방인의 편리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단순 책상머리 작업의 소산이 아닌가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우리 나라의 도로 안내판은 동네마다,지역마다 표기방식이 많이 다르다. 영어의 약자 표기는 특히나 더하다. 이를 각 지역마다의 특성이라고 치부한다면 크게 문제될 것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안내 표지판의 기능이 무엇인가? 우리가 목적지에 올바르게 도착할 수 있도록 길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은 대전의 시민이 하루 만에 서울도,부산도,광주도 다녀올 수 있을 정도로 전국이 일일생활권 안에 놓여 있다. 거리의 이정표나 안내 표지만이라도 같은 표기방식으로 다듬어진다면 우리가 필요로 하는 정보를 보다 신속하고 정확하게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어디 길 표지판뿐이랴.길을 나서는 순간 이미 우린 너무도 많은 정보의 홍수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온갖 광고판,간판들을 통해서 불필요하거나,심지어는 부정확한 정보들까지도 그럴싸하게 포장돼 우리에게 전해진다. 내가 살고 있는 대전은 과학도시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톨게이트를 벗어나자마자 대전을 소개하는 대형 간판에는 친절하게도 원소모형이 그려져 있다. 그러나 이를 어쩌랴! 영원히 발견되지 않을 원소모형인 것을….혹자는 과학기술인들의 눈에만 띄는,일반인들은 그냥 지나쳐버릴 수도 있는 간판의 디자인에 불과한 것에 무에 그리 흥분할 필요가 있겠느냐고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작은 부정확함과 오류들이 눈감아진다면 우린 결국 눈덩이처럼 불어나고야 말 더 큰 문제점들과 싸우기를 포기하고 마는 것은 아닐까? 우리 모두 바르고 옳게 가기를 주저하지 말자. 문득 어느 지방 박물관의 잔디밭에 세워져있던 팻말이 생각난다. '잔디밭에 들어가지 마시오!' 그 아래에는 영어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step by ste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