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내 기업들의 경영권 보호장치 강화를 적극 검토하고 나선 것은 주요 국내 기업들에 대한 적대적 M&A(기업 인수·합병) 위협이 경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는 판단에서다. 지분 분산이 잘돼 있는 상당수 우량 기업들마저 경영권을 보호하는 데 많은 시간과 돈을 쏟아붓느라 연구개발이나 설비투자 같은 생산적인 분야에 제대로 투자하지 못하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주요 기업 총수들이 지난달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 설비투자를 늘리고 고용을 확대하겠다는 '보따리'를 푼 데 대한 화답 차원에서 정부가 적대적 M&A 보호장치를 마련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달 말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만나 "외국인 투자 기업의 범위를 확대해 경영권 방어를 좀더 쉽게 하도록 하겠다"고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적대적 M&A 방어장치도 글로벌 스탠더드로'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달 초 금융 계열사 보유주식 의결권 한도를 축소(현행 30%에서 2008년부터 15%로)하는 대신 적대적 M&A 방어장치를 "글로벌 수준에 맞게 고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외국 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공개매수 의무제 △외국인 지분 인수시 피인수 회사의 이사회 의결 의무제 △외국인 투자시 재경부 장관 허가 요건 등을 폐지했지만,이로 인해 국내 기업들의 경영권이 위협받는 등 부작용이 잇따르고 있다. 정부는 우선 자사주 관련 규정을 대폭 수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배당가능 이익 범위 내로 자사주 매입 물량을 제한하는 규정을 재검토하는 한편 발행주식의 1% 이내,매입신고 물량의 10% 이내로 하루 매수 물량을 제한하는 엄격한 규제들은 폐지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또 의결권 위임장 대결 등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M&A 방어 수단들을 국내에서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관련 규정들을 개선하기로 했다. ◆국내 기업 역차별 논란도 해소 정부는 적대적 M&A를 방어하는 과정에서 걸림돌이 되는 각종 규제들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대기업 그룹의 출자총액제한 규제 △자산규모 5조원 이상 기업의 순자산 25% 이내 타회사 출자 제한 △통신사업자에 대한 투자 제한 △산업자본의 은행 주식 4% 이상 보유분 의결권 제한 등 논란이 돼 왔던 각종 규제들이 수술대에 오를 가능성이 높아졌다. 정부는 또 우호적인 제3자에게 신주를 배정하거나 차등의결권 주식(한 주에 여러 주의 의결권을 부여한 특별주)을 발행할 수 있도록 허용해 달라는 재계 요구 사안들도 적극 검토하고 노동자의 경영참여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는 종업원지주제(ESOP)를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공개매수제 도입은 논란일 듯 정부 일각에서는 기업 사냥꾼의 자금 부담을 늘려 적대적 M&A를 어렵게 하는 공개매수 의무제를 부활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기업 인수 희망자가 일정 지분 이상의 주식(예 25%)을 취득할 경우 반드시 공개매수를 통해 발행주식의 상당량(예 지분율 50%+1주 이상)을 취득하도록 규정한 공개매수 의무제는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에 따라 폐지됐으나 가장 효과적인 M&A 방어 수단으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 M&A 시장 자체를 위축해 기업 구조조정을 지연시킬 수 있고 기존 대주주에게 특혜를 주는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돼 도입 여부는 불투명하다. 현승윤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