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1백 번에 걸쳐 응시원서를 내 봤지만 단 한 군데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며 눈물 흘리는 처녀의 얼굴 옆모습을 텔레비전 화면에서 보고 덩달아 내 눈시울도 더워졌다. 지금 내 강의를 듣고 있는 4학년짜리 대학생들도 벌써부터 초조한 빛이 얼굴에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어느 원로 교수의 증언에 따르면,저렇듯 지독한 취업난은 6·25전쟁 이래 처음 보는 것이란 얘기였다. 논자(論者)에 따라선 대학 졸업자들이 눈높이를 낮춰 이른바 3D 업종에라도 뛰어들어야 한다지만,남의 이야기라고 너무 쉽게 말하는 듯한 느낌이 짙다. 생사 기로에까지 몰린 듯한 경우들도 허다해 뵈는 신용불량자 문제도 '배드 뱅크'란 것 하나로 그렇게 쉬이 풀릴 것 같지가 않다. 민간소비가 얼어붙어 계속되는 내수(內需) 침체 속에 중소기업 도산이 줄을 잇고,지난날 중산층을 자처하던 이들이 급속히 빈곤층으로 떨어져 내려가고 있는 이 모든 상황들은 일단 국내문제들로 치고,치솟는 유가(油價)에다 미국 금리의 인상과 중국경제의 긴축 등이 불러 올 미증유의 파문은 또 어찌할 것인가. 기막힌 건,이렇듯 '위기'가 모든 이들의 피부에 와 닿고 있는데도 정부여당은 그들대로,또 대통령은 대통령대로 여기에 너무도 둔감해 뵌다는 사실이다. 지금 내수만 좀 침체되어 있는 것이지 수출도 폭발적으로 늘고 있고,무엇보다 올 성장률이 5% 이상으로 예견되고 있을 만큼'기초'가 튼튼하다는 것이다.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 같지 않은가. IMF환란 직전에 경제부총리니 청와대 경제수석이니 하는 사람들이 부르짖던 '펀더멘털' 찬송이 지금 또 재연되고 있는 듯해 등줄기에 식은 땀이 흐를 지경이다. 정책실패는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판결에도 불구하고,나는 그 정책수립자들의 판단 해이(解弛)가 더 큰 경제위기의 '본질'이 되고 있다고 믿는다. /경원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