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에 사는 이기섭씨(가명ㆍ47)는 최근 목돈 6천4백50만원을 쥐게 됐다. 1년 전 6천만원을 투자한 하나은행 주가지수연동상품(ELS)의 만기(세전수익률 9%)가 돌아왔기 때문이다. 이 돈을 어디 안전하게 굴릴 데가 없을까 고민하던 이씨. 당초 은행 정기예금을 생각했으나 '금리 3%대'에는 구미가 안 당긴다. 한때 고수익을 냈던 해외펀드(브릭스펀드)도 최근 인도와 중국경제가 불안정하다니 안심이 안 된다. 고민하던 이씨는 결국 아파트를 살 때 빌린 대출금부터 갚기로 결정했다. 이씨는 2년여 전 강남 K아파트를 구입할 때 1억5천만원의 담보대출(3년만기 변동금리형)을 받았다. 당시 4억원에 구입한 이 아파트의 시세는 현재 7억원에 이르러 굳이 대출금을 갚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 어디에 투자하더라도 대출금리(연 6.2%) 이상의 수익률을 내기는 어렵다는게 이씨의 판단이다. 아파트 담보대출을 받은 금융소비자 가운데 이씨처럼 대출금을 미리 갚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국민은행의 경우 지난달 아파트 담보대출 중도상환액은 총 4천62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 1월의 대출상환액 2천2백98억원에 비해 76% 증가한 수치다. 국민은행의 아파트 담보대출 상환액은 2월 3천46억원, 3월 4천27억원 등 올들어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한미은행의 지난달 아파트 담보대출 중도상환액도 8백33억원으로 지난 1월(4백70억원)에 비해 77% 늘었다. 이 은행의 월별 상환액은 올들어 매월 1백억원 안팎씩 증가하고 있다. 이밖에 조흥은행의 4월 아파트 담보대출 중도 상환액은 5백83억원으로 집계돼 지난 1월(3백92억원)에 비해 48%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 관계자들은 "특히 주택거래 신고지역으로 지정된 서울 강남, 송파, 경기 분당 등과 같은 '부촌(富村)' 지역에서의 대출상환액이 많다"고 말했다. 제일은행의 경우 지난 4월 강남구에서만 79억5천만원에 이르는 대출금 중도상환이 이뤄져 다른 지역에 비해 상환액이 두 배 가까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중도상환이 늘어나자 일부 은행점포는 대출실적 악화를 막기 위한 비상영업에 들어갔다. 분당 야탑동의 R부동산 관계자는 "주택거래 신고제 실시 이후 중도상환이 부쩍 늘어나자 은행 지점장들이 중개업소를 돌아다니며 대출 소개를 부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철규ㆍ김형호 기자 gr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