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은 중독성인가요?" "네,그렇습니다." "암을 유발합니까?" "네,그렇습니다." 지난 1997년 3월 라크와 체스터필드를 생산하는 미국 리케트 그룹이 담배회사로는 처음으로 담배유해론을 법정에서 인정했다. 이 회사는 10대를 판촉대상으로 삼았다는 사실도 시인했다. 담배를 둘러싼 집단소송에서 회사측이 백기 항복을 한 셈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담배회사들은 주 정부나 개인들이 제기한 담배소송에서 거액의 배상금을 잇따라 물게 됐고,간접흡연자인 비행기 승무원들이 청구한 소송에서도 어쩔 수 없이 3억달러에 합의해야만 했다. 일부 지역의 배심원들이 천문학적 액수의 징벌적 배상금을 평결하여 담배회사에 결정적 타격을 준 사례도 여러번 있었다. 흡연의 위험성은 이미 50년대부터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담배소송이 줄을 이었다. 그러나 로비력이 뛰어나고 공룡기업으로 성장한 담배회사들은 흡연가에게 모든 것을 뒤집어 씌우는 전략으로 일관했다. 담배의 해로움을 알면서도 스스로 흡연을 선택해서 즐긴 소비자가 그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한다는 주장이었는데,이러한 주장이 90년대 초까지 법정에서 통용됐다. 담배회사들이 폐암을 일으키고 각종 질병을 유발한다는 흡연의 해독성을 철저히 비밀에 부쳐왔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 비로소 법정분위기가 반전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1999년 첫 담배소송이 제기됐다. 5년간의 지루한 공방끝에 며칠전 재판부가 피고측인 KT&G에 담배관련 연구문서 4백64개를 법원에 제출토록 명령했다. 이들 문서 중에는 흡연과 폐암의 상관관계,담배내 유해물질 및 중독성 등이 포함되어 있다고 하는데 국가와 KT&G가 담배의 해독을 알고도 이를 은폐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엄청난 파장을 불러올 것 같다. 미국에서의 승소판결이 담배회사의 고의성과 부도덕성 때문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갈수록 빈번해지고 있는 흡연소송은 대부분 회사측에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소송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국민건강을 지킨다는 차원에서 담배와 관련된 모든 정보가 공개돼야 함은 두말할 나위 없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