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여성에 대한 사회의 빚 ‥ 변도윤 <서울여성플라자 대표>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 dyoon12@seoulwomen.or.kr >
며칠 전 강연에서 흔하지만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접했다.
'여성의 적극적인 사회활동 참여를 통한 자아실현'과 '양육 및 가사노동'이란 상반된 선택의 문제였다.
결혼을 앞둔 여성으로 '고민'의 단계를 넘어 '선택'하려는 심각한 표정이 역력했다.
'양육과 가사노동이 전적으로 내 몫이 되는 결혼은 싫다'는 이 여성은 그 해결책을 구하려는 질문이라기보다 사회생활에서 이미 보아 온 기혼여성의 험난한 삶에 대한 일종의 항변이었다.
어느덧 우리 사회에서 '하나만 키우기도 벅차다'든가 '아이 없이 편안히 인생을 즐기겠다'는 말이 거침없이 논의되고 있다.
사실 우리사회는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이나 가사노동을 '가정의 일'이 아닌 '여성의 일'이라고 암묵적으로 합의했다.
전통적 가치관이나 관습으로 옭아매어 놓은 과거 여성의 숙명은 '이를 인정할 수 없다'는 현대여성의 강한 거부감에 직면하고 있다.
가사노동과 양육에 있어 남성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여성은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이나 결혼 자체가 자아실현의 걸림돌이 된다고 말한다.
아이를 맡길 탁아소 하나 마땅치 않고 교육여건과 경제적 여유 등의 문제를 생각하면 차라리 '포기'를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혼 적령기의 남녀, 젊은 부부들 사이에서 이런 생각이 확대되고 실행된다면 결국 우리 사회는 존속될 수 없다.
사회의 존속과 발전을 위해 가장 기본적인 요건은 구성원의 유지가 아닐까.
우리 사회는 이제까지 '양육과 가사노동'을 통해 사회 존속에 기여해 온 여성과 가정에 대해 그 대가를 지불하는데 너무도 소홀했다.
가사를 분담하자는 가정의 문제나, 아이를 낳지 않고 가사노동에서 보다 자유로운 남성을 선호할 수밖에 없는 기업의 문제만은 아니다.
이제는 사회가 '여성과 가정에 진 빚'을 적극적으로 갚아야 할시점이다.
형식적인 법과 제도는 개선하여 실효성 있는 정책이 입안되고 실현되어야 한다.
적합한 예산이 확보되고 집행돼야 한다.
우리 사회는 그간의 빚을 청산하려는 의지를 보임으로써 사회 구성원들로부터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도 늘 해결책이 아닌 '모험(?)에 당당하라'는 설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