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어머니가 벽처럼 다가올 때가 있다. 세대 차이 혹은 표현방식의 차이 때문이기도 한데,더 이상 설득하거나 토론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될 때 나는 한마디로 '꼭지가 도는 느낌'이다. 그런데 그런 느낌은 어머니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얼마 전 친정식구들과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모 방송국 PD인 남편은 벌써 한 달이 넘게 총선에 관한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는데 '방송 좀 눈여겨 봐 달라'는 나의 발언이 끝나기가 무섭게 친정어머니가 툭 내뱉으셨다. "여당에서 투표 많이 하라고 사주한 거지 뭐." 어머니 말에는 선거 캠페인 방송을 보고 투표율이 높아지면 여당에 유리할 거라는 나름대로의 판단과 젊은 사람들이 들고 뛰는 것 같은 요즘 정치행태에 대한 불만이 암암리에 담겨 있는 듯했다. 다음 달에 칠순이 되시는 어머니는 요즘 돌아가는 정치판세가 불안하고 못마땅하신 모양이다. 거기다 정동영 의장의 노인 폄훼발언까지 더해지고 보니 '젊음과 늙음'간의 갈등이 더욱 부담스러우신 듯했다. 그래도 그렇지. 사위가 하는 일을 그렇게 깎아내리시다니.매일같이 모니터 역할을 자처했던 나로서는 야속할 뿐이었다. 어머니의 소외감,숨어있는 분노. 어찌 그걸 모르겠는가. 어머니는 일제시대부터 6·25의 악몽과 배고픔,새마을운동에서 IMF사태,세계화까지 모두 경험한 세대이다. 무서운 시부모 밑에서 시집살이를 했으며,당신의 표현대로라면 '손톱으로 바위 뜯듯이'해 자식을 키우고 공부시켰다. 그렇게 희생하면서 살았으니 당신의 윗대처럼 존경받으며 느긋하게 살고 싶은 게 당연하다. 나 역시 어머니 같은 시절을 살았다면 더하면 더 했지 덜 하진 않았을 거란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같은 말이라도 좀 골라가면서 해줄 순 없는 것일까. 어쩌면 지금의 사정이 칠순의 어머니가 납득하기에는 좀더 복잡 미묘한 것인지 모른다. 평생 춤이라고는 춰본 적도 없고,'춤'하면 춤바람부터 먼저 떠올리시는 분이 길거리에서 선거유세용 춤판을 벌인 현역 국회의원을 이해할 수 있을까. 권위와 권력으로 압도하는 정치에만 익숙한 분이 정보화와 인터넷으로 무장한 2030세대의 부상을 이해할 수 있을까. 문화는 사치이고 오락일 뿐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어찌 촛불시위와 선거유세가 새로운 사회를 여는 문화 패러다임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겠는가. 어머니와 딸이라는 미묘한 관계 속에서 정치 이야기는 결코 만만한 주제가 아니다. 지난 대선 때 지나가는 말로 노사모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가 "너도 노무현 파지?"하는 바람에 허겁한 후로 가능한한 정치 이야기는 멀리 비껴가게 됐지만,내 쪽에서 먼저 어머니 세대의 권위주의와 아집에 손을 들어 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머니와 나만 보더라도 세대간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 표현방식과 견해 차이를 넘어 결코 무너지지 않은 투명한 벽이 버티고 있는 것이다. 혹자는 이번 총선을 두고 '보수 대 진보' '권위 대 탈권위'라는 식으로 말한다. 어머니가 당신의 경험으로 현재를 바라보듯 나 또한 내 경험으로 현실을 인식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축적된 문화코드의 차이를 어찌 부정하겠는가. 역사의 변화는 늘 세대갈등을 유발한다. 지구상 가장 빠른 속도로 압축성장을 거친 한국에서 이런 현상이 첨예한 대립구도를 보이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현실이 냉혹한 것은 사람들보다 늘 앞서간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내 나이 칠순이 돼 나는 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될지도 모른다. 더 정신없고 더 이해할 수 없는 소용돌이에 끼여 '말세로군,말세야!'를 연발하다 차라리 졸도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런데 그것이 현실이라면 기꺼이 끌어안는 것도 인생의 지혜이자 묘미가 아닐까 싶다. 세대간 갈등은 어느 시대나 늘 존재해왔다. 중요한 것은 세대간의 차이를 인정하고 상대방의 언어를 이해하려는 노력일 것이다. 과거의 축적 없이 어떻게 오늘을 말할 수 있겠는가.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회가 어찌 내일을 향해 도약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