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농촌사정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도시에 비해 소득 수준이 형편없이 떨어져 젊은 사람들의 이농(離農) 현상이 심화되고 있으며,정부의 영농후계자 정책도 실패했다는 비판이 거세다. 농사를 짓겠다는 작정을 하고 농업학교에 들어간 사람 중 농업인으로 남는 비율이 채 10%도 되지 않는다고 하니 일본 농촌의 현주소를 알만 하다. 그렇지만 농업의 주력인 쌀농사에 대한 애착은 유별나 보인다. 특히 외국 수입쌀이 증가하면서는 과민반응이다 싶을 정도로 단단한 대비책을 세우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이미 초밥과 김밥에 맞는 스시쌀(Sushi rice)을 개발해 일본에 수출하고 있으며 호주산과 중국 동북부 랴오닝성 등의 쌀도 일본 시장에서 유통되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쌀의 생산원가가 크게 낮다는 점을 인식하고 이 같은 가격 열세를 질(質)로 승부하려 하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설실미(雪室米)를 들 수 있는데 이는 눈창고에 보관된 쌀이라는 뜻이다. 눈이 많이 내리는 북쪽지방에서 자연눈을 이용해 대형 쌀창고를 만든 것이다. 홋카이도에서 처음 시도된 이 눈창고가 지난해부터 야마가타에서 실용화되고 있는데 가장 쌀맛이 좋다는 창고 내 보관온도인 섭씨 5도를 눈의 냉기로 유지한다. 이 눈창고는 보관에 드는 막대한 전력비를 절감할 수 있을 뿐더러 언제 도정을 해도 추수 당시의 신선도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어 대단한 인기를 모으고 있다고 한다. 일본 농민들이 미질(米質)과 신선도를 높이기 위해 설실미와 같은 유통 합리화와 생산기술에 각별히 신경을 쓰는 이유는 따로 있는 듯하다. 한·일간 자유무역협정이 논의되면서 한국쌀에 대한 경계심이 바탕에 깔려 있어서라고 한다. 한국산의 미질이 일본산에 비해 아직은 떨어진다고 하지만,전자제품에서 보듯 한국산이 멀지 않은 장래에 일본 미곡시장을 상당부분 점유할 것이라는 우려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까지 한다. WTO 협정에 따른 쌀 관세화가 논의되고 있는 현실에서 일본 농민들의 경각심은 바로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센다이=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