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2 01:34
수정2006.04.02 01:37
< dyoon12@seoulwomen.or.kr >
요즘은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여성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어색해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나는 이들의 모습에서 어색했던 과거와 당당한 오늘이 교차하는 회상에 젖어들곤 한다.
1970년대 말 강남고속터미널 앞 대단지 아파트 건설현장을 잊을 수가 없다.
당시 나는 여성단체에서 여성직업 개발을 위한 해외 직업훈련 프로그램을 연구하며 국내에 적용하고 있었다.
최초 여성 도배사 교육훈련과정을 개설하며 실습을 위한 건설현장을 수배하고 다녔다.
'집에서 아이나 보라'는 거친 통념을 설득하며 간신히 마련된 실습터였다.
그 시절만 해도 새벽부터 밀가루 풀을 쑤어 머리에 이고 12층 계단을 오르내리며 초배실습을 해야 했다.
'자신감도 가진 것도 배운 것도 없이 여성 가장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많은 여성'들의 절박함이 배어 있었다.
처음 해보는 일의 고단함과 '새벽부터 여자가 건설현장에 찾아온다'는 등의 서러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간식을 짊어지고 찾아간 토요일 오후는 그래서 늘 울음바다가 되었다.
남성의 일로만 여겨졌던 도배, 타일, 페인트, 건축설계 및 제도부문의 여성인력 활용은 중동건설 붐으로 빠져나간 건설인력 공백의 상당부분을 대체하며, 오히려 성과가 뛰어나다는 평가와 함께 서러웠던 그들에게 자신감과 의지를 북돋워 주었다.
그 시절 절박함으로 호소하며 약 30여종 직업훈련과정의 문을 두드렸던 그들이 이제는 피부관리사, 도배사, 기능대학 교수의 직함으로 만남을 청하고 편지와 청첩장을 보내올 때면 무한한 보람과 함께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새롭게 다짐하게 된다.
또한 사회구조적 어려움을 호소해올 때면 그들에게 '과거의 어색했던 도전'을 상기시켜 주곤 한다.
여성도 이제는 '여성이기 때문에'라는 사회·제도적 차별을 탓하기에 앞서 스스로를 계발하고 도전하는 당찬 자기무장이 필요한 시대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자문하며 부단히 갈고 닦아 사회의 문을 당당히 두드려야 한다.
여성 인력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는 경제ㆍ사회 시스템은 생산적일 수가 없다.
결국 '여성 인력의 활용과 개발'이라는 범세계적 화두는 21세기를 맞이한 우리 정부와 기업이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전략적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