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9월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제5차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가 결렬된 이후 교착 상태에 빠져 있던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이 6개월만에 재시동을 걸었다.


22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전체 회원국 대표가 참여한 가운데 열린 농업분과 위원회 협상이 '재발진'의 신호탄이다.


DDA협상은 90년대의 다자(多者)무역 규범인 우루과이 라운드(UR)에서 논의된 농업ㆍ공산품ㆍ서비스 분야는 물론 반덤핑ㆍ투자ㆍ무역 원활화 등 새로운 통상 이슈를 포괄, 전세계 무역틀을 새롭게 재편하는 작업이다.


그러나 '무한 개방'을 요구하는 선진국과 '개방 최소화' 입장을 고수하는 개발도상국들간의 기세 싸움으로 3년 넘게 난항을 겪고 있다.



협상 의제의 일괄 타결을 시도할 제6차 각료회의 개최 일정도 아직 정해지지 않아 올해 말 협상 종결과 오는 2006년 시행이라는 당초 협상 일정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 농업 협상


미국 유럽연합(EU) 등 선진국과 인도 중국 브라질(G-20그룹) 등 개도국간 '줄다리기'가 가장 팽팽한 분야다.


선진국과 개도국간 상당한 의견 절충이 이뤄진 칸쿤 초안이 후속 협상의 기초가 될 가능성이 높다.


칸쿤 초안은 모든 농산물 품목을 △스위스 방식(관세율을 일정한 상한선 이하로 무조건 끌어내리는 것) △UR 방식(기존 관세율을 일정 비율씩 감축하는 것) △무관세 등 세 그룹으로 분류하는 내용을 뼈대로 삼고 있다.


한국은 DDA 협상에 올라있는 1천4백47개의 농산품목을 UR방식에 얼마나 많이 포함시키느냐가 농산물 개방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관건이 될 전망이다.


칸쿤 초안은 또 개도국에 관세 및 보조금 감축 유예기간을 인정하고 있어 DDA협상 이후 주요 농산물 수출국과의 양허협상에서 개도국의 지위를 인정받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 비농산물(공산품) 협상


한국은 농업협상에서 개도국 지위를 유지하면서 공산품 시장에서는 사실상 선진국 기준에 맞춘 개방수준을 주장하는 엇갈린 입장을 취하고 있다.


선진국들은 개도국에도 예외없는 단일관세 인하공식을 요구하는 반면 개도국은 선진국보다 부담이 덜한 관세인하 방식 적용을 주장하고 있다.


한국은 전기ㆍ전자 건설ㆍ기계 철강 등 경쟁력 있는 분야의 무관세 확대를 적극 추진하는 등 공세적 입장을 띠고 있다.


그러나 칸쿤 회의에서도 구체적인 관세인하 방식의 초안조차 마련되지 않은데다 주요 쟁점인 비관세 장벽 철폐에 대한 논의가 걸음마 단계여서 향후 협상이 순조롭지 않을 전망이다.



◆ 싱가포르 이슈 및 서비스 협상


WTO 5차 각료회의 결렬의 표면적 이유가 된 싱가포르 이슈(무역원활화 정부조달 투자 경쟁)도 선진국과 개도국간 첨예한 이견을 보이는 협상 분야다.


개도국은 양자투자협정(BIT)처럼 외국인 투자자 보호 내용을 담고 있는 투자 분야와 공정거래 규정을 의무화하는 경쟁 분야의 협상 제외를 주장하고 있다.


선진국은 이같은 개도국 입장을 반영, 투자와 경쟁을 아예 협상에서 제외하고 무역 원활화(수출입절차 간소화)와 정부조달 투명성 분야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방향으로 협상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


한국은 기본적으로 4개 분야의 일괄적인 다자규범화를 지지하지만 협상 상황에 따라 투자와 경쟁 분야를 협상에서 제외할 수도 있다는 유연한 입장이다.


서비스 협상은 법률 교육 의료 시청각 분야의 전면 개방을 주장하는 선진국의 요구에 한국은 법률과 교육에 한해 제한적인 시장개방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