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우려와 달리 탄핵 사태가 경제에 미친 충격은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났다.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된 지난 12일만 해도 주식시장을 중심으로 금융시장이 크게 흔들렸으나 투자 주체들의 심리적 동요가 진정되면서 곧바로 안정을 되찾았다. 탄핵안 가결 당일에는 국가 지도력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헌정 초유의 사태가시장 불안으로 확산되면서 국가 경제 전반이 밑뿌리부터 흔들리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팽배했던 게 사실이다. 종합주가지수가 장중 한때 47.88포인트나 폭락하며 공황 조짐까지 보였고 원/달러 환율은 12원이나 치솟았으며 선물시장에서는 선물지수의 폭락으로 일시 매매 중단(사이드카) 조치가 내려지기도 했다. 금융시장이 출렁이면서 경제 부처에는 비상이 걸렸고 다급해진 대통령 권한대행고건 총리는 탄핵 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관계 장관회의에 앞서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을 따로 불러 '책임지고 경제 부처를 통괄해 정치 불안이 경제 불안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모든 조치를 강구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이 부총리는 외환 위기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으로서 닦은 금융시장 관리 경험을바탕으로 시장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조치들을 숨가쁘게 밟아 나갔고 재경부와 금융감독위원회 및 금융감독원, 한국은행 등 관계 기관들은 즉각 비상 체제에 돌입했다. 이 부총리는 은행장을 비롯한 금융기관장 회의를 소집해 손절매(추가 손해를 막기 위해 어느 정도의 손해는 감수하고 주식을 처분하는 것) 등의 금융시장 불안 조성 행위를 자제하도록 당부했다. 또 민생과 서민 생활 안정을 위해 영세 상공인을 적극 배려하고 일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의 자금난 해소에 적극 나서는 등 금융 체계가 정상적으로작동하도록 힘써 줄 것을 요청했다. 이어 국제 신용평가회사와 외국 기관투자가 등 1천명에게 e-메일을 보내 '한국경제의 펀더멘털(기초 여건)은 여전히 강하며 정치 불안은 일시적인 만큼 투자에 아무런 문제도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외국인의 불안을 잠재우는 데 총력을 경주했다. 결국 금융시장의 키를 잡고 있던 외국인 투자자들의 동요는 없었고 국내 기관투자자들도 더 이상 심리적 공황에 빠지지 않고 중심을 지켜 탄핵 사태후 첫 월요일인15일에는 금융시장이 바로 안정을 되찾았다. 재경부를 비롯한 경제 부처는 가장 걱정했던 금융시장이 안정을 되찾고 다른 분야도 별 문제가 없는 것으로 확인되자 탄핵안 가결 6일째인 17일 비상 체제를 해제했다. 이번 사태는 우리나라 경제의 체제와 기본 체력, 국민의 의식이 과거와 달리 정치적 격변에 크게 영향받지 않을 정도로 성숙했음을 입증하는 계기가 됐다. 전문성과 경험을 가진 관료들의 위기 관리 능력이 국가의 안정에 얼마나 중요한지도 체험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경제가 탄핵 정국에 따른 일시적인 충격은 해소됐으나 탄핵의 중.장기적영향권에서도 완전히 벗어났다고 단정하기는 이르다는 게 경제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탄핵 정국이 장기화하고 총선을 앞두고 정치 상황이 혼미해지면서 이해집단간의갈등으로 사회 불안이 커질 경우 소비심리가 냉각되고 이제야 겨우 미미한 회복세를보이기 시작한 경제는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 이 부총리는 19일의 주례 브리핑에서 "탄핵 정국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재정정책등이 효과를 발휘한다면 5% 성장은 무난할 것"이라고 낙관했지만 불안과 불투명성은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원자재 대란에 유가 폭등까지 겹치면서 물가 불안이 높아지고 있고 9.1%까지 치솟은 청년실업은 좀처럼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으며 투자와 소비 위축, 신용불량자 문제도 우리 경제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스페인 열차 테러를 기폭제로 테러에 대한 공포가 세계 경제에 또다시 짙은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는 것도 대외 의존도가 매우 높은 우리나라로서는 걱정되는 대목이다. 김현욱 한국개발연구원(KDI) 박사는 "최근 들어 소비심리가 조금씩 살아나는 기운이 있으나 투자는 전혀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고 "탄핵 사태로기업들이 정치 상황을 좀 더 관망하면서 투자를 늦출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따라 경기 회복의 가시화는 당초 예상됐던 3.4분기가 아닌 4.4분기에나 가능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도 나오고 있다. 김기승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박사는 "상반기에 내수 분야에서 회복의 신호가 나올 것으로 기대했으나 정국 불안과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불가능한 상태"라고 진단하고 "내수의 본격적 회복은 4.4분기 이후에나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울=연합뉴스) 김종현.윤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