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학과시험(필기시험)을 먼저 보느냐 나중에 보느냐도 장애인들에게는 중요한 문제더군요" 경찰청 교통기획과 면허계에서 근무하는 한 경찰관은 16일 오후 서울 을지로1가삼성화재빌딩 국제회의장에서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장애인 운전면허제도개선 공청회'가 끝난 뒤 이같이 말했다. 장애인이 운전면허시험을 보려면 비장애인은 치르지 않아도 되는 운동능력 측정검사를 통과해야 하는 등 헌법상 평등권 침해 소지가 있다는 논란이 일어난 것은 수년 전. 경찰청은 개선방안을 검토해오던 중 장애인단체와 협의를 거쳐 지난 1월 비현실적인 운동능력 측정검사 기준을 완화하는 등 개선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2월중 경찰청 개선안을 확정하고 공청회까지 거친 뒤 3월 이후 도로교통법 등의 관련 조항을 개정하겠다는 계획은 1월말 간담회에서부터 예상 밖의 벽에 부딪혔다. 장애인들이 지금까지는 신체(적성)검사와 함께 운동능력 측정검사를 하고 이를합격해야만 필기시험을 볼 수 있던 것을 필기시험을 먼저 보고 운동능력 평가를 그다음에 하는 식으로 순서를 바꾸자고 주장한 것. 그동안 아무도 시험순서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지만 장애인들의 입장에서는신체장애를 이유로 운동능력 측정검사에서 떨어지면 아예 필기시험을 볼 수조차 없다는 게 차별적으로 느껴졌다는 설명이었다. 또 순서가 바뀔 경우 그동안 신체검사의 한 부분으로 간주되던 운동능력 측정검사가 필기시험에 합격한 뒤 장내 기능시험의 참고자료로만 활용된다는 효과도 있다는 것이다. `장애인 운전면허제도 개선.위헌소송 연대' 안형진 대표는 "애초 우리의 주장은운동능력 측정검사를 아예 폐지하라는 것이었지만 그대로 둘 바에는 순서라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찰은 장애인단체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판단, 시험순서를 바꾸는 것을 포함해 개선안을 이달중 확정해 4월 이후에 관련 법령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경찰은 또 재활전문가가 진단을 거쳐 장애인의 신체상태에 맞는 보조장치를 권고하고 운전교육도 실시하는 `장애인 운전지원센터'를 국립재활원 등에 설치하는 방안을 보건복지부와 협의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신체상태에 따라 취득할 수 있는 운전면허 종류를 제한하던 것도 전면 폐지하고, 장애인용 개조차량 형식승인 절차 등도 건설교통부와 협의를 거쳐 간소화할 방침이다. 청각장애인에 대한 완화방안의 경우 이번 개선안에는 포함시키지 못했지만 앞으로 연구.검토를 거쳐 개선한다는 계획이다. 장애인단체는 그동안 4.8㎏의 수동핸들을 2.5초 안에 580도 돌린 후 24초간 유지해야 하는 등 비현실적인 운동능력 측정검사와 신체상태에 따라 면허종류를 제한한 도로교통법에 대해 평등권을 침해하는 차별행위라며 반발해왔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지난해 7월4일 같은 이유로 경찰청장에게 개선을 권고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02년말 현재 전체 운전면허 소지자 2천100여만명 중 장애인은 10만여명(0.48%)으로 집계됐다. (서울=연합뉴스) 이충원기자 chungw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