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정부주도 개발 40년의 고속성장 대가로 과도한 규제와 취약한 사회통합력이 성장탄력을 약화시키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외환위기 직후 규제개혁을 국정과제로 '규제개혁위원회' 설치와 규제일몰제 등을 동원한 결과 규제건수는 98년 대비 99년은 24.5% 감소했다. 그러나 그후 계속 증가해 작년에는 외환위기 이전 수준인 3천3백75건에 이르렀다(대한상의 '2003년 규제개혁 평가와 과제').사회·경제 발전과 새 과제에 대응하기 위해 법령을 새로 만들고 기존의 규제를 소극적으로 줄인 결과이다. 더 큰 문제는 인허가 등 규제해제 소요기간이 선진국의 10∼30배에 달하는가 하면 규제의 질이 더욱 악화돼 행정권한의 오·남용을 야기한다는 점이다. 규제제도의 불투명, 규(해)제 기준의 모호, 절차의 복잡성, 재량권의 포괄성 등이 그런 사례에 속한다. 때문에 규제비용은 물류비용 수준과 맞먹는 GDP의 10%에 이르러 경쟁력 약화의 중요 요인이 되고 있다. 물론 경제주체의 자리(自利) 추구과정에서 생기는 외부효과와 시장지배력이 시장실패를 야기하기 때문에 이를 조정하기 위한 규제 등 정부개입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정부개입이 균형(적정)수준을 벗어나면 또 다른 비효율과 불공정을 낳는다. 이것이 입법·행정·사법 실패로 구성되는 정부실패이다. 특히 행정권을 재량껏 광범위하게 행사함으로써 빚어지는 행정실패는 회복할 수 없는 사회경제적 비효율을 가져올 수 있다. 적정 수준을 넘는 규제의 양적 과다와 질적 악성화는 경제활동 위축은 물론 경제의지까지 제약한다. 그런데도 아직 균형규제 수준을 객관화하기 어렵기 때문에 기술관료의 반(反)규제완화 논리를 꺾기 어렵고, 규제정보와 기술을 행정부는 기업에, 국회는 행정부에 의존하다보니 행정실패는 계속 잔존한다. 여기에 조직과 권한을 키우려는 '파킨슨 법칙'이 각 부처의 예산과 영향력(budget & domain)을 극대화시켜 규제를 재생산하고 질악화에 가세한다. 또한 기술관료의 규제인식이 '감춰진 세금' 수준에 그쳐 불법행위에 대한 과징금 축소, 검사횟수 축소 내지 면제,구비서류 감소 등에 머물러 규제개혁이 시장구조와 행동의 적정화 등에는 크게 미치지 못한다. 따라서 규제 주체가 견제와 균형을 통해 스스로 균형규제 수준에 이르는 규제재(財)시장 메커니즘을 고안할 필요가 있다. 외부비효과인 규제재를 내부화(internalization)하는 것이다. 행정부는 예산과 영향력을 최대화하고 기술관료는 업적에 대한 보상을 극대화하려는 속성을 지닌다. 규제재의 내부화는 조직과 그 구성원의 이런 성질을 이용해 양적개량화가 가능한 조직(인원)과 예산의 크기를 매개변수로 정부내에 규제시장을 구축하는 것이다. '예산의 사전배분제(top down)'처럼 부처(국·실·팀)별, 업무별로 규제수준과 규제질 모형을 만들고 시장효율화를 달성하는 규제의 균형수준을 정한다. 이어 균형수준의 규제업무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최소인원과 예산총량을 정한다. 일정기간 후 기구별 업무별 규제수준이 적정수준을 넘어서면 기구와 예산총액을 그 비율만큼 가감한다. 물론 담당자에게는 역보상으로 규제개혁 축소를 유인한다. 반대로 규제의 양과 질을 축소하고 균형화하는 한편 개인과 기업활동을 조장 또는 창조업무를 개발하면 그만큼 추가 보상한다. 또한 오염배출권 시장처럼 규제권을 다른 조직기구, 예컨대 부처·국·실·팀 간에 인원과 예산을 매개로 하여 매매할 수 있는 권리도 부여한다. 물론 이런 규제재의 내부화론이 아직은 정형화돼 있지 않고 선례도 드물다. 실행가능하기까지는 사전검증을 통해 시행착오를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규제를 새로운 시장재로 인식하기 어렵기 때문이나 효율적 균형규제 수준을 달성하기 위한 지혜는 역시 시장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前 한국은행 총재 chchon2003@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