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를 보면 그 사회를 읽을 수 있다. 즐비하게 늘어선 포장마차와 어지럽게 나붙은 대리운전 현수막에서 넉넉지 못한 서민의 살림 형편을 엿볼 수 있다. 서민들은 고통을 받고 있지만 경제를 옥죄는 불확실성은 걷힐 기미가 없다. 불법 대선자금을 제공한 기업인에 대한 처벌 수위에 국민적 관심이 모아진 가운데,노무현 대통령은 "검찰 수사가 기업인에 대한 처벌로 바로 진행되지 않았으면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경제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하려는 국정 최고책임자의 '고뇌'로 받아들이고 싶다. 하지만 보기에 따라서 정치인에 대한 사정이 얼추 마무리된 시점에서 기업을 회유하기 위한 '손짓'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유감스럽게도 총선을 앞두고 제기된 대선자금 문제이기에 태생적으로 정쟁적 요소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기 때문에 불법행위를 저지른 기업인은 법에 따라 처벌돼야 한다. 경제에 미치는 파장을 이유로 기업인에게 면죄부를 준다면 국민들은 '유전무죄(有錢無罪)'라는 상대적 박탈감을 갖게 된다. 하지만 기업인을 소환해 구속한다 해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3류 정치에 의해 경제가 휘둘리는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기업인의 구속은 '카타르시스'에 지나지 않는다. 똑같은 문제가 주기적으로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불법 정치자금 개혁이 실패한 이유는 제도 장치 마련이 아닌 '인적 청산'에 치중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인에 대한 처벌 이전에 더 절실한 것은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 정비인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이 불법적인 자금 수수를 유발했는지 냉정히 성찰해야 한다. 우리 정치는 고비용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눈'을 의식해 저비용 정치를 표방했다. 소액 다수의 정치자금 기부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당의 재정적 자생력이 전무한 상태에서,정치권은 소요 자금을 기업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업의 운명이 정치권력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한국적 현실에서,'불이익을 면하기' 위한 보험성 정치자금 제공은 예정된 길이었다. 이번 불법 자금 수사에서 크게 문제가 된 것은 소위 4대 기업이다. 이들 4대 기업은 이미 세계 유수기업과 경쟁하는 글로벌 기업이기 때문에,이권(利權)을 얻기 위해 정치권력으로부터 특혜를 받기 위해 자금을 제공했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면 기업의 귀책사유는 없는가? 기업인의 자금 제공이 정치권력과의 수직적 관계에서 비롯된 불가항력만의 결과였는지,정치권의 부당한 요구에 대해 과감히 '아니오'할 수 없었던 속사정은 무엇이었는지 의문이 남는다. 기업 나름대로 약점이 있지 않았겠는가 하는 추론이 가능하다. 일반 대중의 반(反)기업 정서의 진원지이기도 하다.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정부의 재량적 시장 개입을 최소화하고 정책이 편의가 아닌 원칙을 추구하게끔 해야 한다. 정부의 시장 개입적 규제와 인·허가 제도를 과감히 정비해 정치권에 대한 로비가 필요 없는 기업환경이 조성될 때 비로소 기업의 흥망이 시장에 의해 결정되고 불법 자금 제공의 족쇄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그리고 차제에 기업도 투명경영이 정치권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내는 보호막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불법 자금에 연루된 기업인 처벌은 '사마리아 여인'에 비유될 수 있다. 기업인을 용서할 수는 없지만 기업인에 대한 처벌은 정치인과 구분돼야 한다. 우리 경제가 처한 현실이 절박하기 때문이다. 95년 이래 만불소득의 함정에서 잠재성장률이 급격히 낮아지고 있다. 무엇으로 호구를 삼고 일자리를 창출할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로서는 세계경기의 회복을 십분 활용해야 하는 바,지금 같은 상태가 지속되면 기업인은 손을 놓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최소한 기업인이 경제활동을 계속하면서 사법부의 심판을 받도록 해야 한다. 국민들은 정치인을 수입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며,기업은 한국에서 사업하는 것에 자괴감을 느낄 수도 있다. 3류 정치가 기업가정신을 압살하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 /dkcho@mj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