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에 '렉스펙 단마크(Respekt Danmark) ApS'라는 긴 이름의 회사가 있다. 지난 1964년 비누세제 전문생산업체로 설립된 이 회사는 97년 이전까지는 그다지 별 볼일 없는 회사였다. 20여명의 종업원에 연간 매출은 고작 1백50만달러 정도였다. 하지만 이 회사가 97년 업계 최초로 유럽 환경마크를 획득하면서 얘기가 달라졌다. 화학성분인 LAS(리니어 알킬 벤젠설포네이트)를 세제에 첨가하지 않게 되면서 본격적인 성장가도에 들어서게 된 것. 환경친화적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소비자들에게 호감을 사면서 지난 2002년 매출은 7백만달러로 올라섰고 순이익 역시 10만달러를 넘어섰다. 물론 추가적인 인력 고용이나 설비 확충은 없었다. 소기업 수준에서 매출이 한꺼번에 네배 가까이 증가하자 덴마크 언론들도 앞다퉈 성공 비결을 보도하기도 했다. 세계적인 시스템 가구업체인 미국의 허먼 밀러. 이 회사는 지난 90년 자단(紫檀)과 온두라스 마호가니 등 열대림산 목재를 더이상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회사의 간판 상품이자 개당 2천3백달러를 호가하던 이임스 의자(Eames Chair)의 매출 격감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허먼 밀러는 재활용에도 적극 나섰다. 포장을 줄이는 동시에 쓰레기를 에너지로 전환하는 1천1백만달러 상당의 냉난방 플랜트를 세워 매립용 쓰레기를 90%나 줄였다. 이어 매년 80만개가 소요되는 스티로폼 컵 사용을 금지한 뒤 종업원들에게 5천여개의 머그 컵을 나눠주었다.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잠시 주춤했던 매출은 기업 브랜드가치 향상으로 다시 늘어나기 시작했고 쓰레기를 에너지로 전환하는 냉난방 플랜트와 재활용으로 연간 2백65만달러의 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 한근태 한스컨설팅 대표는 이에 대해 "환경문제에 있어 국가의 역할은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드는 반면 기업의 역할은 커진다"며 "기업이 환경보호에 앞장서게 되면 그 이익이 결국 기업으로 돌아온다"고 말했다. 반대의 사례도 있다. 지난 2001년 일본 소니는 유럽에 수출하려던 플레이스테이션 1백30만대를 폐기 처분해야 했다. 중금속인 카드뮴의 검출량이 기준치보다 높게 나왔기 때문이다. 1억6천만달러에 달하는 손실보다 브랜드 이미지 훼손이 더 컸음은 물론이다. 살충제 회사인 유니온 카바이드사는 지난 1984년 무려 2천8백명이 사망한 인도 보팔공장의 유독가스 누출사고로 4억2천만달러를 보상한 뒤 도산 직전에 몰리기도 했다. 이제 웬만한 국내 기업들도 환경경영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환경친화적인 제품이나 서비스는 선택재가 아니라 필수재로 자리잡고 있다. 해외 선진기업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환경경영 시스템을 정착시켜 놓고 개발도상국의 경쟁업체들을 제압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실제 환경문제를 도외시하고는 국제경쟁에서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는 구조다. 유럽연합(EU)은 오는 2006년 7월부터 납 수은 등의 유해물질이 포함돼있는 전기ㆍ전자제품 수입을 전면 금지할 계획이다. 조립과정에서 납땜을 이용하는 국내 가전업체들로서는 이 장벽을 돌파하지 못할 경우 수출이 원천 차단되는 것이다. 또 미국과 유럽 등은 환경보호를 위해 무역규제 조치를 허용하는 다자간 환경협약(MEAs)을 자국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새로운 무역장벽으로 활용하고 있다. 현재 발효 중인 2백여개의 MEAs중 무역 규제 조치를 포함하고 있는 협약은 20여개에 이르지만 그 수는 앞으로 더욱 증가할 전망이다. 이와 함께 전 세계에는 40여개의 환경마크 제도가 운영 중이며 EU는 적용대상 품목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어 국내 기업들의 수출부대비용이 상당 폭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KOTRA 조병휘 통상전략팀장은 "2006년이 되면 우리나라의 유럽수출품 70% 가량이 환경규제를 받게 될 것"이라며 "남들이 하니까 적당히 흉내내는 식으로 대응하다간 시장을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따라 기업들도 지금까지 규제를 피해나가는 수동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규제를 뛰어넘고 활용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일본의 NEC와 후지쓰 등은 내년까지 환경 기준에 부적합한 협력업체들을 절반 이상 도려내기로 했다. 도요타자동차는 전기모터를 보조 동력원으로 사용하는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지난 97년 세계 최초로 시판해 환경경영 선도기업의 이미지를 심는데 성공했다. 국내에선 삼성전자가 미국과 유럽지역 환경규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글로벌 환경경영추진팀을 운영하고 있다. 이 팀은 향후 환경과 관련된 해외의 법규화 진행정보 입수 및 선진업체들과의 전략 컨소시엄 구축 작업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LG전자는 모든 제품에 유해물질 사용을 금지했고 연말까지 모든 제품에 납땜을 하지 않도록 생산방식을 변경키로 했다. 현대자동차는 연비향상과 배기가스 절감, 차세대 환경자동차 개발 등을 위해 총 3백억원을 들여 올 하반기에 환경기술연구소를 건립하기로 했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