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앨런 그린스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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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 이사회(FRB) 의장이 오는 2008년까지 또 한 번의 임기를 보장받았다.
'세계의 경제대통령'이라는 FRB 의장을 20년 이상이나 하게 되니 정말 놀라운 일이다.
취임 초에는 '약체'라는 우려가 많았다.
친숙한 사이였던 제임스 베이커 당시 재무장관의 강력한 추천으로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낙점을 받기는 했지만 경직된 인상과 안경을 걸친 작은 눈이 영락없는 '샌님'이었던 탓이다.
전임 폴 볼커 의장이 2m에 이르는 거구에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갖고 있었던 것과 대비돼 더욱 그랬다.
하지만 그는 이런 우려를 비웃듯 시장의 신뢰를 한 몸에 받는 것은 물론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에서 절대적 지지를 얻어냈다.
정치적 감각도 탁월해 정권과의 관계를 친밀하게 유지해 왔고 정책 면에서도 백악관과 대부분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렇지만 FRB의 독립성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정부측과 견해가 맞설 때면 끝까지 소신을 관철해온 덕분이다.
주가가 22.6%나 폭락했던 블랙 먼데이(1987년 10월19일) 때 재무부와 증권감독위원회는 주식시장을 폐쇄하자고 주장했지만 그는 시장 폐쇄는 치명적 부작용만 낳는다며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소신 관철은 대통령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경기 회복을 위해 과감한 금리 인하를 요구했다 거부당한 후 "내가 재지명한 그린스펀이 나를 실망시켰다"는 말로 섭섭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온갖 찬사를 누리는 그린스펀도 경쟁자에 대해선 잔인했다고 한다.
클린턴 대통령에 의해 부의장으로 지명되면서 강력한 라이벌로 떠올랐던 앨런 블라인드를 교묘한 언론플레이를 통해 중도 하차하게 만들었고 통화정책에서 종종 다른 입장을 보이는 펠릭스 로하틴 위원의 부의장 지명을 저지하기도 했다.
어쨌든 그린스펀의 장수는 일만 잘 하면 요직을 오래 차지하고 있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미국 사회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철저한 성과주의에 의해 나라가 굴러간다는 뜻이다.
1년이 멀다하고 장관이 바뀌는 우리로서는 부럽기만 한 미국의 저력이다.
이봉구 논설위원 bklee@hankyung.com